[2024 파리 올림픽]
“기어서라도 무대 오르겠다” 열정… ‘근육 강직’ 질환 고백 1년반만에
목소리 재활통해 개회식 무대 열창… “역경 딛고 도전하는 올림픽 상징”
“푸른 하늘이 무너질 수 있어요. 땅도 무너질지 몰라요.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상관없어요. 세상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아요.”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마무리되던 26일 밤 12시(현지 시간) 직전. 프랑스 파리의 껌껌한 밤을 흰 조명으로 화려하게 빛낸 에펠탑 2층 중앙에서 샹송의 대명사 에디트 피아프(1915∼1963)의 ‘사랑의 찬가’가 애절하게 흘러나왔다.
카메라가 에펠탑 무대를 클로즈업하자 진주 자수로 빛나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캐나다 퀘벡 출신 가수 셀린 디옹(56)이 나타났다. 온몸의 근육이 뻣뻣해지는 희귀 신경질환인 ‘전신 근육 강직인간증후군(SPS)’을 앓아 다소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빗속에서도 힘 있게 노래를 불렀다.
개막식 피날레를 어떤 가수가 장식할지는 행사 보안과 흥행을 위해 사전에 공개되지 않지만 며칠 전부터 디옹이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디옹의 공연 루머가 돌았다. 그럼에도 ‘설마 디옹이 무대에 오를까’라고 의심하던 이가 적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병을 고백한 지 약 1년 반 만에 기적을 이룬 것. 디옹도 이날 감격에 찬 듯 눈물을 글썽거렸다.
문화적 역량을 보여줬지만 다소 난해했다는 지적이 나온 개회식을 ‘디옹의 피날레’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의 공연은 역경을 딛고 도전하는 올림픽 그 자체였다는 얘기다.
● “기어서라도 무대에 오르겠다”
디옹이 건강한 모습으로 올림픽 주제곡(‘더 파워 오브 더 드림’)을 불렀던 28년 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회식 때보다 감동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세계 정상급의 ‘디바’였던 당시와 달리 최근 디옹의 삶은 역경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옹은 2016년 든든한 매니저였던 남편 르네 앙젤릴을 17년의 투병 끝에 암으로 떠나보냈다. 그 뒤 음악적으로도 슬럼프가 찾아왔고, 2022년에는 SPS에 걸려 가수 활동을 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2022년 12월 디옹은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눈물을 머금은 채 “SPS란 희귀 난치병에 걸렸다”며 “가끔 걷지 못하고 성대 조절도 잘 안 돼 노래하기가 어렵다”고 고백하며 공연 일정을 취소했다.
무대 복귀가 어려울 것 같던 디옹이 2020년 3월 공연 이후 4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꾸준한 치료와 관리였다. 그는 지난달 아마존을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는 셀린 디옹’에서 “매주 5일 운동과 물리 및 보컬 치료를 반복했다”고 소개했다. 다큐멘터리에는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디옹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영국 BBC방송은 디옹이 받은 ‘목소리 재활’ 치료의 효과가 입증된 셈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무대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어 가능했다. 지난달 미 NBC의 ‘투데이쇼’에서 인터뷰 중 눈가가 촉촉해진 디옹은 “기어서라도, 손으로 말을 하더라도 무대에 다시 오르겠다”며 “그(무대에 선) 순간이 그립다”고 했다.
● “복귀 시기, 내 몸이 말해줄 것”
디옹은 무대 복귀를 꿈꾸면서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5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복귀 시기를 묻는 질문에 “난 모른다. 내 몸이 말해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치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재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선 숨진 연인을 위해 ‘사랑의 찬가’를 만들었던 피아프와 디옹의 삶이 묘하게 닮았다는 반응도 많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디옹의 공연은 피아프에 대한 헌사”라고 했다.
전신 근육 강직인간증후군(SPS)
100만 명당 1명이 걸리는 희귀 난치병으로 온몸의 근육이 뻣뻣해지는 신경질환이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40세 이상 여성이 이 병의 환자 중 다수를 차지한다. 치료제는 아직 없고, 완치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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