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
韓 요트 ‘살아 있는 전설’ 하지민… 2010년부터 AG 3연패 아시아 최강
올림픽선 28→24→13→7위 상승세
“망망대해서 홀로 사색… 거기에 끌려”
‘바다 위의 철학자’ 하지민(35)이 다음 달 1일 프랑스 마르세유 앞바다에서 파리 올림픽 시상대를 향해 돛을 올린다. 한국 요트는 여전히 ‘월드 클래스’와는 거리가 있는 게 현실. 그래도 하지민은 “마르세유 앞바다는 변풍(바람 변화)이 많아 내게는 오히려 기회”라고 말한다. ● 한국 요트의 살아있는 전설
하지민은 19세였던 2008년 베이징 대회를 시작으로 이번까지 5회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한다. 하지민보다 올림픽에 많이 나간 한국 선수는 없다. 이은철, 진종오(이상 사격), 윤경신, 오성옥(이상 핸드볼) 등 4명이 하지민과 똑같이 5회 연속 올림픽 출전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
하지민은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딩기(dinghy·돛단배)’ 최강자로 통한다. 하지민은 2010년 광저우 대회 때부터 3회 연속으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에서도 데뷔전인 2008년 베이징 대회 때 28위였던 순위를 24위→13위→7위로 점점 끌어올리고 있다. 올림픽에서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는 한국 요트 선수는 하지민뿐이다.
하지민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식 매체 ‘올림픽스닷컴’ 인터뷰에서 “파리 올림픽 때는 시상대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올림픽 메달을 따든, 그렇지 못하든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메달을 따면 명예나 돈이 따라올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건 결국 사라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트는 평생 하는 스포츠다. 눈앞의 순위를 생각하기보다 내 약점부터 극복하고 싶다. 예전에는 등 뒤의 미중풍을 받으며 파도를 타야 하는 상황에서 정확성이 떨어졌는데 굵직한 대회를 거치며 부족한 점을 보완해 여기까지 왔다”며 “이번 올림픽을 충분히 잘 준비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 자신을 믿고 내 경기를 해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하지민에게 가장 힘을 주는 존재는 역시 가족이다. 하지민은 “요트는 현지 적응 훈련이 많아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길다. 그래서 (가정과 운동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지민은 이번 대회 때도 아내 이수진 씨와 딸 리아 양을 한국에 남겨둔 채 홀로 프랑스로 향했다. 아내가 만삭이기 때문이다.
● 바다 위의 고독한 체스 플레이어
부산이 고향인 하지민은 양정초교 4학년 여름방학 때 부산시에서 개최한 체험 수업에 우연히 참가해 요트를 접했다. 그 전까지는 수영 정도만 했을 뿐 그 흔한 태권도나 축구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민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인데 바다에 나가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며 “대회에 나가면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지만 바다에서는 대부분 유유자적하게 인생이나 철학적인 부분을 사색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어 요트를 계속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그를 IOC는 ‘바다 위의 철학자’라고 불렀다.
요트 경기는 망망대해에서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따져 5분 뒤에 조금 더 안전하고 경쟁에 유리한 곳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배를 옮기는 과정의 연속이다. 요트 경기를 ‘바다 위의 체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지민의 주 종목인 레이저급은 더하다. 레이저급 선수는 넓이 7.06㎡짜리 돛을 단 배를 혼자 타고 경기를 치른다. 그래서 올림픽 요트 10개 종목 가운데 혼자 판단하고 결정할 부분이 가장 많다.
한국 사람들이 바둑이나 장기보다 체스에 관심이 덜한 것처럼 요트도 별 관심을 받지 못한다. 하지민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소식을 널리 알린 것도 그 자신이었다. 다른 종목 금메달리스트가 언론 인터뷰 등으로 바쁠 때 하지민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국 땅에서 애국가 울리게 만든 게 자랑’이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하지민은 “반은 장난으로, 반은 진심으로 나의 마음을 어딘가에 올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민은 계속해 “내가 올림픽에 5회 연속 출전하는 것 자체가 현재 시스템이 해내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냐. 선수가 직접 나서서 판을 짜기는 힘들지만 경기에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기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번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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