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2024]
2010년 亞게임 2관왕 자만했다
런던올림픽 선발전 탈락 슬럼프
2015년 대표 복귀 양궁인생 만개
“메달 따도 운동하는 건 바뀌지 않아… 더 나아가고 싶어 다음 올림픽 도전”
“메달 땄다고 (자만심에) 젖어 있으면 안 된다. 해 뜨면 마른다.”
4일 파리 올림픽 3관왕에 오르며 세계 최고의 궁사로 등극한 한국 양궁 대표팀 맏형 김우진(32)은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우진은 이날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브레이디 엘리슨(미국)과의 결승에서 슛오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4.9mm 차로 승리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21년 도쿄 올림픽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김우진은 이번 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단체, 혼성, 개인)을 더하며 한국 선수 역대 최다인 5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갖게 됐다. 이번 대회 전까지 4개씩을 따낸 김수녕(양궁), 진종오(사격), 전이경(쇼트트랙)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김우진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올림픽 금메달을 한두 개 땄다고 해도 내가 운동하는 건 바뀌지 않는다. 대우야 바뀌겠지만 내가 계속 양궁을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딴 메달에 영향 받지 않고 나의 원래 모습을 찾아 계속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어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그거다. 메달 땄다고 (자만에) 젖어 있지 말아라. 해 뜨면 마른다”고 했다.
이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조언이다. 고교생이던 18세에 태극마크를 처음 단 김우진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오르며 한국 양궁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잠시 자만하면서 추락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이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같은 해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 출전 선수 60명 중 55위를 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4명을 뽑는 대표팀엔 이름을 올렸지만 경기에 나서는 출전 선수 3명엔 들지 못해 관중처럼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몇 년간 슬럼프를 겪은 김우진은 2015년부터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올해까지 10년간 대표팀 에이스로 흔들림 없이 활약했고 이번 대회에선 ‘극강(極强)의 경기력’으로 양궁 인생의 꽃을 활짝 피웠다.
김우진은 “이제 조금은 스스로를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선수)’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며 웃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만이 뚫고 들어올 자리는 없다. 그는 “난 여전히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다. 은퇴 계획도 없다”며 “4년 뒤인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또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출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오늘의 메달은 오늘까지만 즐기겠다. 내일부터는 다 과거로 묻어두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가겠다”고 강조했다.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올라왔다. 안주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그에게는 함께 레이스를 펼쳐 갈 좋은 경쟁자들도 있다. 남자 개인전 4강에서 슛오프 끝에 김우진에게 패한 팀 후배 이우석(27)이 대표적이다. 3관왕에 오른 직후 김우진은 이우석에게 “형이 이제 ‘고트’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우석은 “그럼 제가 그걸 뛰어넘는 고트를 향해 도전해 볼게요”라고 장난스럽게 답했다. 김우진은 선뜻 “그래, 네가 도전해 봐”라며 받아들였다. 둘은 그동안 치열한 대결을 벌여 왔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전에서 1위를 한 이우석은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2개를 땄는데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김우진에게 패했다.
결승 상대 엘리슨 역시 10년 넘은 라이벌이다. 이번까지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해 은 3개와 동메달 3개를 딴 엘리슨은 “난 안방에서 열리는 로스앤젤레스 대회에도 도전할 것 같다. 김우진과 리턴매치를 벌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우진은 “이번엔 내가 한 번 이겼지만 4년 뒤 다시 만나면 그때는 또 모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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