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올림픽 스타디움을 올림픽 성화를 든 프랑스 코미디언 자멜 드부즈가 바라보며 제33회 하계 파리올림픽 개막식이 시작된다. 어리둥절한 것은 이 프랑스인만은 아니었다. 전 세계 시청자도 그러했다. 아무도 없는 경기장 모습에 전 세계 언론도 혼란에 빠져 보도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사고가 난 것일까.
비어 있는 스타디움을 뒤로하고 봉송주자인 지네딘 지단과 아이들은 지하철 포르토 도핀(Porte Dauphine)역 입구로 이동한다. 아르누보의 거장 엑토르 기마르의 아르누보 스타일이 돋보이는 지하철 입구는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설계되고 설치됐다. 곡선 형태와 유기적인 디자인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건축에 반영하고자 했고, 당시 새로운 재료였던 철재를 사용해 우아함과 품격을 창조해냈다. 기마르가 “철재 건축에도 인간의 취향과 따스함이 배어나야 한다”고 한 선언처럼 아르누보 스타일의 지하철 입구는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파리의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정체성을 상징하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에게 인상적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파리 곳곳의 명소 담은 개막식
봉송주자 지단이 탄 지하철은 곧 정전이 되고 이를 아이들에게 넘겨준다. 아이들은 지하수로에서 가면을 쓴 봉송주자에 의해 배를 타고 파리 중심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센강으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폭 150m가량의 센강 좌우에는 산책로가 자리해 매우 친수적인 공간이다. 여기서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에펠탑 등 수많은 유명 건축과 공원으로 연결된다. 이제부터 가면을 쓴 봉송주자의 활약이 시작된다. 필자는 그가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놀랍게도 지붕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지붕을 건너뛰며 파리 시내를 돌아다닌다. 파리는 건물 대부분이 6~7층 높이로 규제된 휴먼 스케일 도시다. 왜 파리가 아름다운가. 파리는 저층 높이의 건물 지붕이 서로가 서로를 이어가며 질서와 조화를 이룬다. 도시 스카이라인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후죽순, 삐죽빼죽 자기가 잘났다고 무질서하게 솟아 있는 여러 현대 도시는 매력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질서와는 대조적인 높이를 자랑하는 에펠탑과 노트르담 대성당이 랜드마크가 된 것이고, 파리가 더 아름다운 이유다. 가면을 쓴 봉송주자의 파격적인 행동은 자연스럽게 파리라는 도시의 아름다움과 명품 건축으로 우리를 이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163년에 시작해 180여 년 뒤인 1345년 완성된 고딕 성당 건축의 걸작이다. 길이 128m, 폭 48m, 높이 69m의 대형 건축물을 신축하느라 당시 최첨단 공법이 동원됐다. 소위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다. 이 공법은 높은 건물을 가능하게 하고,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설치할 수 있게 해 고딕 건축의 백미인 ‘빛의 건축’을 창조해낸다. 2019년 발생한 성당 화재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는데, 첨탑과 지붕 상당 부분이 소실됐다. 수많은 전쟁과 화마를 이겨낸 성당의 재건 공사 모습은 희로애락이 반복되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멋지고 아름다운 것만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개막식 정신이 이어진 듯하다.
루브르 박물관은 800여 년 역사를 갖는다. 중세 성채에서 궁으로, 다시 박물관으로, 그리고 1989년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의 설계에 따라 루브르 피라미드가 들어서면서 세계 최고 박물관으로 거듭난다.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박물관에 이집트를 상징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건물을 짓는다며 격렬한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 또한 유리 피라미드는 전통적인 루브르 궁전의 외관을 망친다는 비판도 있었다. 낙천적인 건축가 페이와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대통령을 포함한 프랑스 정부 관료들은 놀라운 혜안과 믿음으로 이를 견뎌낸다. 페이는 이 사각형의 입체 구성이 기존 디귿자형 박물관을 가운데서 연결하고 잇기에 최적의 해법이며, 기존 건축을 존중하고 경의를 표하기 위해 높이를 맞추고 시각적으로 가로막지 않는 특별 투명 유리로 설계했다. 결과적으로 페이의 ‘관계와 투명성의 건축’은 빛을 발하고, 프랑스의 ‘위대한 변덕쟁이’ 시민들은 루브르 피라미드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1900년 철도 역사로 시작한 오르세 미술관은 1939년 철도역 영업을 중단한 이후 버려져 낡아빠진 천덕꾸러기가 됐다. 철거와 재사용 논의를 거쳐 1986년 세계 최대 규모의 인상주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는 기존 철도 역사가 가진 가치를 최대한 보전(중앙홀의 웅장함, 밝고 쾌적한 유리 천창, 시간성을 가진 과거 건축적 요소 등)하고 새로운 미술관의 필요에 맞춰 개조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놀랍도록 공존하는 연금술을 펼친다. 기존 파리의 도시 맥락을 이어가면서도 일반 미술관과는 다른 극적 공간을 내부에 펼쳐낸 것이다. “건축은 과거와 대화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아울렌티의 말은 오르세 미술관뿐 아니라 이번 개막식과도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개막식 최고 주인공은 에펠탑
이번 개막식의 가장 큰 주인공은 뭐라 해도 에펠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에펠탑은 설계 초기부터 그 어떤 건축물보다 극심하고 격렬한 반대에 부딪친 역사를 갖고 있다. 에펠탑은 프랑스 엔지니어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해 1887년부터 1889년까지 2년 2개월 동안 건설됐다. 그 시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건설 당시 파리 문화인들과 예술가들로부터 “추악한 구조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파리의 전통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라는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그만큼 혁신적이었으며, 그만큼 낯설었고, 그만큼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세워질 때는 온갖 불평불만을 다 들었던 에펠탑이지만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가 개최되자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둔다. 사람들은 에펠탑이 그리는 미려하고 우아한 곡선미에 감탄했고, 섬세하고 레이스 같은 철재의 새로운 미감에 눈떴다. 또한 직접 탑에 올라가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파리의 아름다움에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됐다. 에펠탑은 구조공학의 위대한 성취를 보여주는 예이자, 철로 만들었지만 공기의 승리, 바람의 승리로 인식됐다. “공학과 예술은 서로 다른 길을 걷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들을 결합함으로써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에펠은 불굴의 의지와 천재적 능력으로 시대를 앞서가고, 시대를 뛰어넘으며, 시대를 개척해나갔다.
이번 파리올림픽 개막식은 총 12막으로 구성돼 올림픽 개막식 행사를 개혁·혁신·파격으로 이끌었다. 주무대는 올림픽 스타디움이 아닌 센강과 파리 전역으로 특히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대성당 등 수많은 명소와 건축물, 공원, 도시로 확장돼 공연과 선수 입장이 동시에 이뤄졌다. 기존 관습과 규칙을 깨는 형식으로 다소 혼란스럽고 산만하며 난해하기도 했던 이번 개막식에서 바탕이 되고 배경이 된 것은 건축과 환경과 파리라는 도시였다. 설명한 대로 파리 랜드마크인 이 건축물들은 개막식 행사와 같게도 개혁·혁신·파격의 아이콘이었다. 이들은 초기에는 그 생소함과 낯섦으로 많은 경우 배척과 수모와 격렬한 반대를 경험해야 했다. 이후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아본 프랑스인의 ‘위대한 변덕’에 의해 사랑받고 있고, 파리를 상징하는 대표 아이콘이 됐다.
파리 밤하늘에 셀린 디온의 ‘사랑의 찬가’가 울려 퍼진다. 디온은 희귀병 ‘강직인간증후군’으로 투병하며 재활에 힘쓰는 와중에도 혼신의 무대를 보여줬다. 예상치 못한 비로 디온의 옷과 반주하는 그랜드 피아노가 빗물에 젖었다. 그래서 그의 젖은 노래가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스포츠에도, 인생에도, 건축에도 비가 오고 화재가 발생하며 부상과 병을 경험하기도 한다. 오해와 비판, 실패, 모진 반대에 맞부딪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뚫고 개막식 마지막 순서에서 ‘사랑의 찬가’가 파리의 아름다운 센강과 랜드마크, 도시를 향해 울려 퍼진다. 그것을 가장 잘 보고 느낄 수 있는 파리의 대표 아이콘 에펠탑을 가운데 두고 기존 스타디움을 벗어나 파리라는 도시 전체를 보여주는 개막식에서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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