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양궁 3관왕 임시현
“준비했던 만큼 경기 못해 아쉽고 흔들리지 않는 우진 오빠에 놀라
양궁 대표 선발전, 공정 그 자체… 이 자리 지키려면 계속 노력해야”
파리 올림픽 양궁 3관왕 임시현이 27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양궁장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자세로 카메라 앞에 섰다. 임시현은 다음 달 시작되는 2025년도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갈 길이 멀다는 걸 새삼 느꼈다.”
27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에서 만난 파리 올림픽 양궁 3관왕 임시현은 뜻밖의 말을 했다. 21세 대학생인 그는 3관왕의 기쁨을 한껏 누릴 만도 한데 파리 올림픽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각오를 새로 다지고 있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줄곧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임시현은 파리 올림픽 랭킹 라운드에서 694점을 쏴 세계기록을 세웠다. 전훈영(30), 남수현(21)과 팀을 이룬 여자 단체전에선 올림픽 10연패를 달성했고 김우진(32)과 함께 나선 혼성전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개인전 결승에서 남수현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3관왕에 오른 그는 한국 선수단 여자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임시현의 이름 앞엔 ‘새로운 신궁(神弓)’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서 최고의 선수라고 말씀해 주시지만 최고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사람들의 기대대로 진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3개나 땄는데 어떤 점이 만족스럽지 못했을까. 임시현은 “8점을 몇 번 쐈다. 이전까지 국제무대에선 없던 일이라 충격을 받았다”며 “경기 운영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내가 준비했던 만큼의 경기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롤모델이 따로 없던 임시현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확실한 모범 답안을 찾았다. 남자 양궁 대표팀 에이스이자 혼성전 파트너였던 김우진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와 2021년 도쿄 대회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김우진 역시 파리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며 한국 선수 역대 최다 금메달(5개)의 주인공이 됐다.
임시현은 “남녀 대표팀을 모두 이끌어야 했던 우진 오빠는 누구보다 큰 부담을 갖고 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혼성전 때도 ‘나만 믿고 쏴’라고 말하더니 정말 최고의 경기로 그 말에 책임을 졌다”며 “레전드는 뭔가 다르다는 걸 우진 오빠를 보면서 알게 됐다. 나도 4년 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선 우진 오빠처럼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평범한 선수였던 임시현은 2022년 한국체육대에 입학한 뒤로 실력이 급성장했다.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5관왕인 ‘원조 신궁’ 김진호 한국체육대 교수는 임시현의 성장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봤다. 임시현은 대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오기가 생겼다. “실력으로 보여 주겠다”고 마음먹은 임시현은 오전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와 밤엔 훈련을 이어 갔다. 마음에 드는 슈팅이 나올 때까지 활을 놓지 않았다. 어떤 날엔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활을 쏘기도 했다. 지난해 국가대표로 뽑힌 임시현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는 “아시안게임은 몰라도 올림픽 3관왕은 어렵지 않겠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말에 그는 엄지와 검지를 말아서 잇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세워 눈에 살짝 갖다 대는 ‘바늘구멍 세리머니’를 일찌감치 준비했다.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3관왕을 반드시 차지해 이 세리머니를 해 보이겠다는 각오였다.
임시현은 “위기의 순간에 10점을 쏘기 위해선 그만한 자신감이 생길 만큼 노력해야 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내가 노력한 게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걸 느꼈다”며 “경기에서 뒤지고 있을 때마다 ‘내가 노력한 게 있는데’ 하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 만약 내가 졌다면 ‘상대 선수가 나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겠구나’ 하고 깨끗하게 인정하려 했다”고 말했다.
임시현은 올림픽이 끝난 뒤 여러 행사와 방송 출연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에도 틈틈이 활을 쏜다. 인터뷰를 한 이날도 오후 훈련을 마친 뒤 저녁 행사에 참석했다. 임시현은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은 공정 그 자체다. 나보다 잘 쏘는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가 태극마크를 다는 게 당연하다”며 “공정한 경쟁이 있기에 나도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년에 열리는 양궁 국제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뽑는 국가대표 선발전은 9월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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