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우승 횟수, 이런 것보다는 그저 마요르카의 작은 마을에서 온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은퇴 경기를 마친 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라파엘 나달(38·스페인)은 이렇게 말했다. 통산 메이저 22승, 프랑스 오픈 최다승(14회) 등 굵직한 기록을 남긴 그는 ‘클레이 코트의 황제’라 불렸다. 하지만 나달은 “그저 꿈을 좇았고, 그 꿈을 이룬 소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나달은 20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남자 테니스 국가대항전 데이비스컵 네덜란드와의 8강전 첫 단식에 출전해 보틱 판더잔츠휠프(29·네덜란드·80위)에 0-2(4-6, 4-6)로 패했다. 이날 스페인은 2단식, 1복식에서 1-2로 졌다. 스페인이 탈락하면서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는 나달은 이날 치른 단식 경기가 마지막 경기가 됐다.
나달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은퇴를 위해 이 대회에 온 게 아니다. 감정은 넣어두고 스페인 우승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달은 이날 경기 전 스페인 국가가 울릴 때부터 눈물을 글썽였다. 나달은 경기 후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날 패배로 나달은 데이비스컵 단식 29연승 기록도 깨졌다. 나달이 데이비스컵 단식에서 패한 건 데뷔전이었던 2004년 이후 20년 만이다.
나달의 단식 경기 출전은 노바크 조코비치(37·세르비아)에게 패했던 8월 파리 올림픽 단식 2회전 이후 이날 경기가 처음이었다. 올해 부상으로 제대로 시즌을 소화하지 못한 나달은 은퇴 경기에서도 실전 감각 부족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달은 “지금 상태에서 불평을 많이 할 수는 없다. 최대한 좋은 에너지와 태도로 즐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없었다. 상대가 나보다 좋은 경기를 했다는 것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나달은 이번 대회 전까지 단, 복식을 통틀어 데이비스컵 32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나달은 이제껏 데이비스컵에서 다섯 차례(2004, 2008, 2009, 2011, 2019) 스페인의 우승을 이끌었다. 마지막 우승을 더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 나달은 “원했던 결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에서 최선을 다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시간을 스페인 대표팀 선수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나달은 “매일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중에서도 정말 운이 좋았다. 삼촌(토니 나달)이 동네 테니스 코치였고 그 덕에 정말 어린 나이부터 테니스를 쳤다. 취미를 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테니스 덕에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모두 다 행운이었다”며 “여전히 마음은 선수로 더 뛰고 싶지만 몸이 더 이상 뛸 수 없다고 하니 받아들여야만 했다”고 작별인사를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