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의 등 보고 내가 따라간 것처럼… 후배들이 내 등 보고 따라올 길 만들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3일 03시 00분


내년 프로데뷔 20년차… “지금도 우승은 하면 할수록 좋아
올해 올림픽 도전, 후배들 자극되길… 다음목표 JLPGA 영구시드-상금왕”
후배들 멘토 역할 자처… “해외 투어는 자신의 골프 발전기회
‘나가면 고생’ 인식 강해져 안타까워… 철저한 자기관리와 함께 용기내야”

올해 호주오픈 정상 등 한국 골프선수 최다 ‘65회 우승’ 신지애 11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만난 신지애가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골프공을 들어 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신지애는 “팬들이 힘을 줘야 우리 선수들도 힘이 난다. 내년에도 함께 힘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금은 ‘골프 잘한다’보다 ‘대단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팬들에게 더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서 계속 힘이 나죠.”

신지애(36)의 활약은 ‘대단하다’는 말로도 설명하기 부족하다. 내년이면 프로 데뷔 20년 차를 맞는 신지애는 올해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일 끝난 ISPS 한다 호주오픈 정상에 오르며 한국 골프 선수 최다 우승 기록을 65회로 늘렸다. 2006년 프로로 데뷔해 19년 동안 두 해(2011, 2022년)를 빼고는 매년 우승했다. 2010년 5월엔 한국 선수 최초로 여자 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현재 세계랭킹은 24위로 한국 선수 중 다섯 번째로 높다.

11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만난 신지애는 “그동안 우승을 많이 해봤지만 지금도 우승은 하면 할수록 좋다. 올해 마지막 출전 대회에서 매듭을 잘 지어 벌써 내년 시즌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또 “많은 분의 응원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내가 좋은 플레이를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한국, 미국 무대를 거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신지애는 올 시즌 여느 때와는 다른 한 해를 보냈다. 파리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세계랭킹을 끌어올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랭킹 포인트가 걸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에 8차례 나섰다. 2013년을 끝으로 미국 활동을 사실상 접은 이후 가장 많은 LPGA투어 대회 출전이었다. 한국, 스코틀랜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대회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목표로 삼았던 세계 15위 이내에 들지 못해 올림픽 무대는 밟지 못했다.

신지애는 “올림픽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응원을 받았다. 국가대표라는 명예에 걸맞은 단단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루지 못한 건 아쉽다”며 “프로 19년 차에도 새로운 목표를 갖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이런 노력이 후배들에게도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지애는 이날 인터뷰에서 ‘자극’, ‘영감’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평소 품어왔던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세리 키즈’의 대표주자로 불려 온 신지애는 “선배들의 등을 보고 내가 따라간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등을 보여주면서 따라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내가 몸담고 있는 골프계가 계속 발전하고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신지애는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올해 10월엔 미국에서 활동 중인 후배 고진영(29)이 신지애를 만나기 위해 시즌 도중 일본 도쿄를 찾기도 했다.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공통점이 있는 두 선수는 2016년 단체대항전(더 퀸즈)에서 같은 팀으로 뛰면서 가까워졌다.

신지애는 “편하게 놀러 오라고 했는데 진영이가 골프백을 들고 와서 합숙 훈련을 한 셈이 됐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골프가 얼마나 외로운 스포츠인지를 내가 먼저 겪어본 만큼 이런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를 계속 잘 치고 싶다. 그래야 내가 후배들에게 하는 말에 힘이 실린다”고 했다.

신지애는 후배들이 해외 투어 도전을 주저하는 분위기를 안타까워했다. 신지애는 “일본에서는 선수도 협회도 ‘일본 골프를 전 세계에 보여주자’는 분위기가 있는데 한국에선 ‘해외에 나가면 고생’이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 자신의 골프를 발전시킬 기회로 생각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11일 끝난 LPGA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에선 1, 2위를 모두 일본 선수가 차지했다.

신지애가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던 건 자기 관리에 철저했기 때문이다. 주니어 시절 연습장 앞 20층 아파트 계단을 매일 7차례 오르내릴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했다. 지금도 대회 기간엔 밀가루, 유제품 등 컨디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음식은 철저히 피한다. 신지애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보다 내가 원하는 몸 상태로 경기할 때의 기쁨이 훨씬 더 크다”며 “나는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트레이닝을 통해) 몸으로 먹는다고 인식한다”고 말했다. 신지애는 노보기 플레이를 한 날이나 생일(4월 28일)에만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여기고 콜라 한 잔을 마신다고 한다.

신지애가 매년 1월에 호주 멜버른으로 전지훈련을 가는 것도 오후 9시는 돼야 해가 질 정도로 낮이 길어 골프를 오래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지애는 “전지훈련 기간은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마음이 제일 편하다”며 “올해 대회 출전을 위해 해외로 자주 나가면서도 부상 한번 없이 컨디션을 잘 조절한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신지애는 “골프는 한마디로 ‘인내’”라는 말도 했다. 그는 “코스를 공략할 때도 유혹이 많고, 스윙할 때는 백스윙을 하기도 전에 먼저 칠 생각부터 한다. 인내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그때까지 내 스윙 템포를 지키면서 기다릴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로 데뷔 후 20번째 시즌을 앞둔 신지애는 이루고 싶은 것이 여전히 많다. 그는 “은퇴 시기보다는 다음 목표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고 했다. 당장은 JLPGA투어에서 2승을 추가해 한국 선수 최초로 영구 시드를 획득하는 것이다. 신지애는 영구 시드에 필요한 투어 30승을 했는데 이 중 2승은 비회원으로 따낸 것이어서 2승을 더 해야 한다. 신지애는 “많은 분께 약속한 상금왕도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신지애가 JLPGA투어 상금왕에 오르면 한국, 미국, 일본 세 나라 투어에서 모두 상금왕을 차지하는 최초의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신지애는 그동안 일본에서 상금 2위만 두 차례(2016, 2018년) 차지했다. 투어 누적 상금 13억7202만3405엔(약 129억882만 원)인 신지애는 내년 시즌에 후도 유리(48)의 13억7262만382엔(약 129억1444만 원)을 넘어 투어 통산 상금 1위에도 도전한다.

#신지애#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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