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5연패에 도전하는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이 ‘리베로’ 딜레마에 빠졌다. 뒷문이 흔들리다 보니 국가대표 출신 아웃사이드 히터였던 정지석, 곽승석을 수비전문선수인 리베로로 기용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항공은 1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2-3(25-22 20-25 19-25 25-21 16-18)으로 졌다.
막심 지가로프(등록명 막심)가 31점으로 공격을 이끌었으나 아웃사이드 히터인 정지석이 15점에 그쳤고, 정한용이 12득점에 범실 12개를 쏟아낸 것이 뼈아팠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이날도 곽승석을 지난 한국전력전에 이어 2경기 연속 리베로로 내보냈다. 경기 전 곽승석에 대한 질문에 토미 감독은 “그는 후위 스페셜리스트”라고 믿음을 나타냈다.
실제로 곽승석은 리시브 효율 56.25%를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플레이를 펼쳤다.
하지만 곽승석이 리베로 유니폼을 입으면서 대한항공은 귀중한 아웃사이드 히터 자원을 수비전문선수로밖에 쓰지 못하는 상황에 닥쳤다.
이날 정한용이 공격성공률 42.86%, 범실 12개로 흔들렸음에도 교체할 만한 마땅한 카드가 없었다. 그나마 막심을 아레프 모라디(등록명 아레프)로, 1~3세트에 바꾼 것이 날개 자원의 유일한 변화였다. 선수층이 두꺼운 대한항공이라고 하지만 주전 OH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뚜렷한 묘책이 보이지 않았다.
엔트리 중 아웃사이드 히터로 이준과 루키 서현일 등이 있었으나 서현일만 원 포인트 서버로 나왔을 뿐 공격적으로 활용하진 않았다. 배구에 ‘만약’은 없지만 V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살림꾼’ 곽승석이 정지석의 대각에 자리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시즌 초반부터 계속되고 있다. 2024-25시즌을 앞두고 오은렬(현대캐피탈)이 떠난 대한항공은 올 시즌 유독 리베로 포지션에서 고민이 엿보인다.
1라운드 초반에는 피로골절로 회복 중이었던 정지석이 4경기 동안 리베로 유니폼을 입었고, 최근에는 2경기 연속 곽승석이 1번 리베로로 나섰다.
그렇다고 리베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대한항공에는 정성민, 강승일, 송민근에 최근 전역한 박지훈까지 4명이 있지만 토미 감독의 완전한 신뢰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송민근은 1경기에도 나오지 않았고 정성민은 1경기 출전에 그쳤다. 박지훈은 지난달 제대 후 아직 코트를 밟지 못했다. 강승일만이 10경기 41세트에 나와 리시브 효율 40.61%를 기록 중이지만 그는 프로 통산 13경기 출전에 그칠 정도로 경험 면에서 부족하다.
토미 감독은 “기존 리베로 선수들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주전으로 나설 수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당장 말하긴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사령탑은 “좋은 리베로가 되기 위해서는 리시브와 수비, 커버를 잘해야 한다. 후위에서 에너지가 넘쳐야 하며 리더십까지 필요하다”고 원론적인 답을 내놨다.
앞으로 계속 리베로 곽승석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도 여지를 남겼다.
경기 전 “곽승석은 훈련장에서 두 포지션을 모두 잘 훈련하며 소화하고 있다”고 했던 토미 감독은 풀세트 패배 후에는 “선수 개인(리베로 곽승석)에 대해 평가는 할 수 없다. 모두가 잘했지만 볼 하나 싸움에서 졌다.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부임 후 역경을 이겨내고 세 시즌 연속 대한항공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던 토미 감독이 꼬인 실타래를 잘 풀어내고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설 수 있을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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