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종합탁구선수권 男단식 첫 정상 오른 이상수
“나보다 후배들에 기회를…” 국가대표 자동선발권 포기
‘한국 탁구의 맏형’ 이상수(34)는 23일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정상에 올랐다. 2009년 실업무대에 데뷔한 이상수가 이 대회 단식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5년 전 19세의 나이로 종합선수권에 처음 출전했던 이상수는 올해 대회 남자 단식 참가자 164명 가운데 최고령이었다. 결승에선 띠동갑 후배인 조대성(22)을 상대했다.
이 대회 혼합복식, 단체전에서는 여러 차례 정상에 올랐지만 단식 우승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이상수는 26일 전화 통화에서 “우승했을 때는 얼떨떨하기만 했는데 이제 정말 1등을 했구나 싶어 가슴이 벅차다. 단식에 이어 (삼성생명 소속으로) 단체전까지 우승해 올 한 해 유종의 미를 거둔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이상수의 우승보다 탁구계를 놀라게 한 건 그 이후 행보였다. 이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국가대표 자동 선발권을 후배들을 위해 포기했기 때문. 이상수는 “나보다는 후배들이 국제대회에서 한 번이라도 더 경험을 쌓는 것이 한국 탁구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혼합복식 파트너였던 아내 박영숙(36)과 주변 선배들의 만류가 이어졌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상수는 “‘더 도전해 보라’는 응원도 많이 받은 게 사실이다. 그분들도 내 이야기를 듣고는 선택을 존중해줬다”고 말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21년 도쿄 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이상수의 태극마크 반납은 장고 끝에 나왔다. 이상수는 “올해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놓친 이후 줄곧 고민해왔다. 올림픽 메달에 대한 간절함으로 끝까지 도전했지만 최선을 다한 만큼 아쉬움은 없었다”고 했다. 이어서 “내가 나간 두 차례 올림픽에서 모두 한국 탁구가 ‘노메달’에 그치다 보니 내 탓인가 싶기도 하더라. 더 이상 자리를 차지하기보단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탁구는 파리 올림픽 때 혼합복식(임종훈-신유빈 조) 동메달을 목에 걸긴 했지만 남자 단식, 단체전에선 여전히 메달을 따지 못했다. 이상수는 “누구 하나 쉬운 상대가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 높아졌지만 후배들은 여전히 좋은 승부를 하고 있다. 자만하지 않고 전진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이상수는 세계 최강 중국 선수들을 상대로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닥공’(닥치고 공격) 스타일을 잃지 않았다. 특히 남자 탁구 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마룽(36·중국)을 상대로 2승(8패)을 거두기도 했다. 이상수는 올 2월 부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준결승 때도 마룽을 제압했다. 이상수는 “중국 선수와 경기할 때 진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후배들에게도 늘 말하지만 중국 선수도 사람이고, 부담을 갖는 건 오히려 상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밀어붙이면 후배들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수는 이제 실업무대에 집중할 계획이다. 대표팀 후배였던 정영식(32)이 올 9월 창단한 세아탁구단 감독이 된 것도 이상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이상수는 “언젠가는 지도자로 후배들을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라면서도 “지금은 당장 아프지 않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탁구를 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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