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향하는 능선을 확실히 막고 시간과 여유를 갖고 오대산 일대의 야산을 하나하나 정밀수색하라』 『무장간첩이 식량이 모자라서 민가로 내려오는 것은 옛날 얘기다. 고양이(국군) 에게 덤벼들도록 쥐(무장간첩)를 구석으로 자꾸 몰아가야 한다』 『간첩소탕은 주민의 협조없이는 힘들다. 산세에 밝은 주민들을 최대한 이용하고 주민신고에 즉각 대처하는 자세를 보여라』 지난 68년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한 뒤 북으로 도주하던 무장간첩을 소탕하는 작전 에 참가했던 강원 평창군 진부면 향토예비군 출신들이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간 첩소탕 해법이다. 초등학생 李승복어린이가 무장간첩에게 무참히 살해됐던 당시의 기억을 아직도 생 생히 간직하고 있는 이들에게 지난 9일 양민 3명이 역시 무장간첩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68년 당시 무기창고 관리부소장이었다는 咸斗植씨(59·상업·강원 평창군 척천리) 는 『무장간첩이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오대산일대로 들어오게 한 것부터가 잘못』이 라며 『산세가 험해 몸을 숨기기 좋은 이 곳에서 수색작전을 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며 초기 포위망이 뚫린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울진 삼척사건 당시 국군과 함께 매복을 하는 등 작전에 직접 참여했다는 金弘所 씨(60·약사·강원 평창군 하진부리)는 『주민신고가 있으면 즉각 대처해 빠르게 1 차 포위망을 구축해야 한다』며 『상대는 하룻밤에 산길도 몇십㎞ 간다는 그야말로 「프로」란 걸 잊어선 안된다』고 당부했다. 소탕작전이 장기화될수록 민(民)과 군(軍)의 신뢰감형성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 었다. 洪炯玉씨(58·회사원·강원 평창군 하진부리)는 『잠수함 첫 발견자에 대한 논란 에서부터 섣부른 오대산개방에 따른 민간인 피해에 이르기까지 군에 대한 신뢰감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라며 『68년 당시의 경험을 비춰봐도 국군만의 외로운 싸움 으로는 간첩소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夫亨權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