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한 교수가 재미 한인유학생 초청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겨울 미국 맨해튼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행사를 마치고 떠나면서 환송나온 한국인 교수 에게 태연스레 물었다고 한다. 『한국은 영어가 공용어입니까』라고. 얼마나 맥빠지 는 얘기인가. 한국비교언어학연구소의 96년 통계에 따르면 외국어연수를 위해 우리 국민이 해외 에서 지출하는 비용은 연간 4조원대에 이르며 대부분 영어권 국가에 집중돼 있다는 것. 또 국내 학생들의 연간 과외비용 17조원 중 3조원이 외국어교육에 지출되며 대 학생도 과외활동 시간의 70%이상을 영어공부에 투자한다는 얘기다. 그많은 비용과 시간은 인성교육과 과학탐구 등 우리가 늘 부족하다고 말하는 다른 분야에 투자했어야 할 부분을 할애한 셈이기에 안타까움은 더하다.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겠다고 자랑스레 선언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이 선언 은 고교로까지 파급돼 영어로만 수업하는 국제고 신설계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제는 언어의 경제적 가치를 깨달아야 할 때다. 그렇다고 영어교육을 포기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어려움을 느끼는 까닭은 이미 우리의 사 고가 국어의 논리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어공부를 위해 국어의 논리 체계가 서기도 전에 영어의 논리체계를 주입시키겠다고 한다면 모국어의 존재를 부 정하는 셈이 아닌가. 나아가 영어나 국어의 논리체계 어느 하나도 정립하지 못한 「 국제적 변종」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모국어를 익히듯 외국어도 그렇게 교육하자는 논리는 그만큼 비과학적 이고 비효율적이다. 모국어 논리로 사고체계를 형성시킨 뒤에 모국어를 통한 외국어 교육을 진행하는게 순리다. 모든 언어는 공통된 논리를 지닌다. 따라서 국어의 논 리를 확실히 터득하고 있다면 외국어의 논리는 쉽게 깨닫게 마련이며 반복된 연습을 통해 숙련시킬 수도 있다. 「영어실력은 사실상 국어실력」이라는 말도 이같은 맥 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와 같은 이론위주의 영어교육으로 되돌아가자는 의미는 아니다. 하 지만 최근의 영어교육은 국어를 잊고 영어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식의 국어파괴 교육 이 아닌가 싶어 크게 걱정된다. 앞서 한국인 교수가 왠지 부끄러운 생각에 황급히 「우리말 인사」로 영국인 교수 를 전송하고는 맨해튼의 거리를 한없이 걸었다는 고백을 우리 모두 되새겨봤으면 한 다. 이 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