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1〉 그런 날이 있다. 불현듯 누군가를 생각했는데 바로 그 사람에게서 소식이 오는 날,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안 그래도 네 생각 했는데 뭐가 통했나보다, 라고. 그것은 늘 그리워하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을 때도 곧잘 하게 되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우리 사이에는 특별한 주파수를 감지하는 텔레파시가 있나봐요. 그런 경우는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상대를 생각하고 있고 그에게서 연락이 오는 순간도 예외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랑에서 누구나 겪는 자기최면이다. 내게 그 두 가지 일이 함께 일어났다. 동생 애리의 편지를 받던 날, 현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리는 다음 주쯤이면 파리를 떠날 거라고 적고 있었다. 샤모니에 가서 몽블랑을 구경한 다음 밀라노와 로마를 들러 서울로 돌아오겠다고. 「서울에 가면 집을 구할 때까지 언니 집에 좀 있어도 괜찮을까?」하면서 「안 그러면 엄마한테 가야하는데, 다 큰 딸이 재가한 엄마 집에 빌붙어 있는 것도 우습잖아」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년쯤 뒤이던가, 새엄마가 재가를 할 때도 애리는 내게 편지를 보내 이유를 설명했다. 금실이 좋던 부부일수록 혼자 되면 더욱 못 견딘대. 아버지하고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엄마는 더 외로워하시는 것 같아. 아무튼 엄마가 재혼을 하셨으니 이제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파리로 떠나게 됐어. 그러나 서둘러 파리로 떠날 때 애리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조그만 프로덕션에서 일할 때가 오히려 훨씬 쾌활했다. 갑자기 전공과 전혀 다른 디자인 공부를 하겠다며 에스모드를 향해 떠나는 애리의 모습 속에는 분명 쓸쓸함이 있었다. 그 쓸쓸함이 현석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애가 떠나고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