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인간에게 내려진 마지막 천형, 불치의 전염병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암이나 에이즈보다도 무서운 이 신종 전염병의 이름은 공주병.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잘난 척하다가 몰매를 맞아 사망하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공주병시리즈가 대유행이다. 외모가 뛰어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잘난 척하는 여성이 이른바 공주병환자다. 컴퓨터통신이나 청소년 대상 라디오프로에 이어 중견탤런트 김자옥씨가 이 병에 걸린 여고생으로 나오는 TV코미디프로도 등장했다. 인터넷에는 스스로를 왕자나 공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끼리 재치를 겨뤄 「왕족」을 가리는 선발대회까지 열리고 있다. 공주병이 인기를 끌자 같은 증세를 가진 남성을 가리키는 「왕자병」, 남들이 쳐다보기만해도 자기를 찍었다고 생각하는 「도끼병」, 일단 찍으면 누구나 자기에게 넘어온다는 「나무꾼병」, 미시족에게 주로 나타나며 만나는 남자들마다 자신의 숭배자라고 믿는 「왕비병」 등 「유사 질환」도 잇따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따져 보면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사람들이 어디 일부 청소년들뿐인가. 분수를 모르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 내년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권주자들은 자신만이 한국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제왕병」증세를 보이고 있다. 덩달아 「제왕만들기」에 열심인 「신하병」환자나 대권의 향방이 어느 쪽인지 눈치보기에 바쁜 「내시병」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정치권만 욕할 게 아니다. 우리는 이제 먹고살게 됐다고 어느새 힘든 일, 빛 안나는 일은 서로들 남에게 미루고 과실만 따 먹으려는 「귀족병」에 걸려 있는 건 아닐까. 대우경제연구소가 우리나라의 경쟁지수를 산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들과 비교해 봤더니 노동생산성이 24개 회원국중 꼴찌를 면한 22위였다고 한다.경제성장률도 95년 9%에서 96년 6.8%, 97년전망은 6.5%로 떨어지고 있다. 「왕족」과 「귀족」들만 가득한 사회는 경제의 수레바퀴를 제대로 굴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