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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각 저생각]수능과 유토피아

입력 | 1996-11-08 20:43:00


겨울이 슬금슬금 우리 곁에 다가서는 듯싶더니 수능 시험 역시 어느새 코앞에 닥쳤다. 미국 유학시절의 일이다. 박사학위 취득의 마지막 관문인 구두시험을 마친 후 지도교수가 나에게 하버드대학의 박사가 된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나는 이제 남은 인생 동안 시험이라곤 다시 볼 필요가 없게되어 무엇보다도 기쁘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시험에 울고 웃었던, 어찌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인생의 쳇바퀴로부터 홀연 뛰어내린 기분이었다. 우리 10대들의 삶은 정말 애처롭기 그지없다. 우리 인간이 그어느 동물보다도 훨씬 더 잘 발달된 두뇌를 가지고 있고 또 그 덕에 이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강력한 종으로 군림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현재까지 길게 보아 한 4백만년이 흘렀다고 보는데 이는 지구의 역사 전체를 하루에 비유할 때 1초도 채 안되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린 모두 큰 축복을 안고 태어났지만 그걸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떠날 채비를 차리고 있다. 얼마 후 수능 시험 성적이 나오면 제가끔 그 높고 낮은 숫자를 받아들고 그것이 마치 우리의 사주팔자를 정해주는 신의 계시라도 되는 양 누구는 의사가 되고 누구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정해진 기차에 오를 것이다. 「가지 않는 길」에 대한 꿈을 꿀 여유조차 없이 그냥 길을 떠난다. 유토피아가 어떤 곳인지 난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은 아마도 모두가 각자 늘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사는 곳일 것 같다. 젊음이여,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덥석 올라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인생의 열차에 일단 오른 후 다른 열차로 건너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수능 시험 성적표에 찍힌 그 세자리 수에 구속받지 말고 살아가는 순간 순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혹 당신이 받은 숫자가 좀 남는다 할지라도 꼭 타고 싶은 열차에 오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