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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동네병원이 사라진다]병원운영포기 김모씨 사례

입력 | 1996-11-15 20:30:00


「曺源杓기자」 『다시 태어나도 절대 산부인과 의사는 되지 않을 겁니다』 서울에 있는 명문의과대를 졸업하고 서울J병원에서 전문의를 딴 뒤 서울에서 개업했다가 1년반만에 망해먹고 다시 「고용의사」로 돌아온 산부인과 의사 金모씨(44)의 말이다. 金씨가 산부인과 전문의를 따고 개업을 한 것은 지난 90년. 개업을 하기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전문의를 따고도 2년동안 고용의사생활을 한 뒤였다. 金씨는 고용의사를 하며 벌어 모은 돈 4천만원과 은행융자 3천만원으로 서울 은평구에서 35평규모로 산부인과를 열었다. 물론 처음부터 분만실이라든지 인큐베이터 같은 것은 아예 갖추지 않았다. 입원실과 수술실을 갖추고 야간분만을 하면 의료사고위험이 높을 뿐만이 아니라 낮은 의료보험수가 때문에 무조건 적자를 본다는 주위 동료들의 충고 때문이었다. 기대가 컸으나 개업을 하고 한두달이 지나면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만 지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6개월을 견뎠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 25∼30명정도의 부인병 환자를 진료했지만 손에 들어오는 총수입은 고작 월 2백만원에서 3백만원정도. 그것으로 간호사 두명에게 월급 50만원을 주고 건물 월임대료 50만원과 각종세금을 내고 나니 金씨 자신의 월급은 없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우선 간호사를 1명으로 줄였다. 그리고 동료들로부터 각종 첨단기계를 이용한 검사료가 「효자노릇」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때부터 金씨는 가끔 환자에게 『자궁암 검사는 6개월에 한번씩 하는 것이 좋으니 검사를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흔히 얘기하는 「과잉진료」와 「사치검진」이었다. 그러나 권유를 받은 환자들이 『그런 것은 하지않겠다』는 말이라도 하면 얼굴이 화끈거려 「내가 이런 짓하려고 의사가 됐나」하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1년반정도를 견뎠지만 더 이상 계속하다간 보증금까지 털어 먹겠다는 생각에 다시 월급의사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폐업하면서 인테리어 등에 투자한 것이 아까워 권리금이라도 받으려고 의협신보 등에 병원매매광고를 냈지만 인수자가 나타나지않아 5개월동안의 월세만 덤으로 물고 결국 권리금 한푼 못받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현재 고용의사로 받고 있는 보수는 월 4백만원정도. 그러나 金씨는 『35세 정도에서 시작해 50세 정도까지 밖에 할 수 없는 산부인과 의사로서는 결코 많은 보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金씨는 『양심껏 하자니 뛰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고 돈을 벌자니 강제검진이나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앞으로도 절대 개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