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福禮기자」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배영호씨(41)는 공군에서 예편하면서 동료들로부터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81년 공군 최우수 조종사(탑건)로 뽑히는 등 가장 잘 나가는 조종사였던 그가 대령진급을 코앞에 둔 93년 예편하면서 명예도 돈도 안따르는 경비행기학교설립자 겸 교관으로 나섰기 때문. 그러나 그가 말하는 「미친놈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하늘을 맘껏 날면서 제손으로 100% 국산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서…」. 『대령이 되면 전투기는 그만 타고 행정직으로 가야하는데 참모생활은 매력이 없더라구요. 민항에도 몇개월 있었지만 민항기는 버스 운전하는 것같아서 재미가 없고…. 결국 마음껏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비행학교를 만들고 교관으로 나서게 된 거지요』 지난해 2월 경기 안산시 고잔역부근에 「에임하이 항공클럽」(0345―82―4966)을 세우고 민간인에게 경비행기 조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국내에 경비행기학교는 모두 9개교이지만 그와 같은 탑건이 설립한 학교로는 유일하다. 동호인 30여명을 가르치며 번 돈은 1년에 겨우 2천여만원. 비행기 수리와 부품교환, 기름값 등으로 남은 돈은 하나도 없다. 시간만 나면 비행기설계를 하고 부품을 조립한다. 천막안에 보관하는 4대의 비행기를 지키느라 거의 매일 밤을 활주로 부근에서 지내고 아침은 라면으로 대충 때웠다. 군에서는 연구직 등을 줄테니 다시 돌아오라는 제의가 계속됐고 민항기에 다니는 동료들은 월수 7백만원 정도를 받는 기장으로 취직하라고 그를 설득했다. 그러나 돈은 벌지 못해도 남은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 보고 싶어 하는 그의 고집은 누구도 꺾지 못했다. 『현재 항공기 생산은 외국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비행기 생산에 가장 중요한 고강도 초경량의 금속소재에 대해 연구중인데 몇년내에 100% 국산제품으로 1인승 제트기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그의 외길인생은 비행에 대한 애착 뿐만 아니라 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 어려서부터 조종사를 꿈꾸었지만 교육기관의 획일적인 분위기가 싫어 일반대학에 진학했다. 75년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간부후보생으로 입대했고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아 세계최고의 강훈을 자랑하는 미군의 최고정예 조종사 양성학교에도 다녀왔다. 그에게 지난 8월 한가지 기쁜 일이 생겼다. 중학교 3학년생 아들 으뜸이가 14세의 나이로 국내 최연소 경비행기 조종사 면허증을 따낸 것. 어려서부터 비행기에 태우고 다닌 덕택이었다. 그는 아들의 비행술을 아낌없이 칭찬한다. 날씨가 나빠도 믿고 내보낼 수 있는 조종사는 아들뿐이란다. 아빠가 우상인 으뜸이의 장래희망도 역시 전투기 조종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