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은 남과 북 모두의 염원이다. 그런데도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왜일까. 현실을 보자. 북한은 한반도의 공산주의화 통일을 원한다. 반면 남한은 자본주의화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쌍방이 모두 일방적인 승리로 통일하기를 바라고 있는 셈이니 평행선만 긋고 있다. 당연히 북한은 남한의 군사력에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남한 역시 북한의 군사력에 위협을 느끼는건 마찬가지다. 남한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침공해서 통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북한은 믿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쌍방이 모두 힘에 겨울 정도의 군사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셈인지 해결책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들어 북한의 입지가 곤란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남한은 이 기회에 북한정부가 도산해 자멸하거나 남한에 무릎 꿇기를 바라는 인상이다. 만일 북한이 스스로 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의 현정책을 고집한다면 앞으로 남한은 어떤 정책을 사용할 것인지 궁금하다. 전쟁을 하지 않는 한 국제관계에서 상대방의 일방적인 굴복을 요구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쌍방 모두에 어떤 형태로든 이득이 있어야 거래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서로가 자신의 이익만을 주장하게 되면 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다. 남과 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쌍방이 서로 승자의 입장에서 통일을 논의할 수 있도록 사전준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이 북한의 경제발전 노력을 지원함으로써 북한도 남한처럼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북한의 경제가 좋아지면 이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남한을 공격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는 설득력이 없다.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남과 북이 한없이 대결하고 있는 상태보다는 여건이 나을 것임은 분명하다. 북한이 미국이나 일본 또는 기타 국가들과 교역을 시작하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국민생활도 향상될 것이다. 북한이 남한처럼 잘 살게 돼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이룬다면 굳이 남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이유가 없어진다. 오히려 남한과 동등한 승자의 입장에서 대화를 시도할 여유를 갖게 된다는 건 자명하다. 이때는 남과 북이 모두 승자의 입장에서 한반도 통일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민족만이 반세기 전의 유물 속에 스스로 빠진 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이제는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유 동 천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