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文明豪특파원」 서기 2000년의 러시아 대통령선거를 겨냥하고 있는 유력한 대권 도전 후보들로는 알렉산드르 레베드 전국가안보위서기,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의장,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시장 등이 꼽힌다. 일부에서는 아나톨리 추바이스 대통령행정실장을 넣기도 한다. 이 가운데 현재 러시아 국민 사이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은 레베드다. 지난 6월 대선 1차 투표에서 3위를 차지, 일약 정계의 거물로 부상한 레베드는 그 여세에 힘입어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가안보회의서기직을 맡아 체첸전쟁의 종식 합의를 끌어냄으로써 국민의 호감을 더했다. 그러나 차기 대권을 노리는 공공연한 발언과 정부내 보수세력들에 대한 공격으로 추바이스를 중심으로 한 옐친 친위세력들의 반발을 사 밀려났다. 민족주의성향이 강하고 시장경제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그는 조직적 기반이 약하고 자금능력이 없다는 약점 때문에 다음 대선까지 유권자들의 지지와 관심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체르노미르딘은 92년 총리가 된 이래 한번도 다른 생각을 드러낸 적이 없이 일관되게 옐친에게 충성을 다해온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옐친의 신임 또한 두텁다. 옐친이 결국 후계자로 그를 지명하지 않겠는가 하는 관측도 이 때문이다. 총리지명 당시는 연료에너지부문을 대표하는 보수적인 경제관료라는 평을 들었으나 재임기간중 「온건하지만 시장경제정책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사람」으로 평이 바뀌었다. 지난 95년6월 부디온노프스크 인질사건 당시 체첸반군 인질범들과 직접 전화협상을 통해 인질을 석방토록 하는 데 성공, 위기관리능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통치자의 카리스마가 없다는 것이 약점이다. 지난 1월 부총리직을 물러났다가 불과 2개월만에 옐친의 선거운동진영에 합류한 추바이스는 선거자금 주선과 선거운동조직에 관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7월 행정실장에 임명되었으며 옐친이 입원해 있는 동안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하면서 「실세」로 부상했다. 러시아 정세 분석가들은 그가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러시아 신흥재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조심스럽게 차기대권 도전 여부를 살피고 있다고 판단한다. ===============유 력 후 보 2 人 ============= ▼ 레베드…올 대선 3위 예비역 육군소장 ▼ 알렉산드르 레베드(46)는 예비역 육군 소장 출신으로 전대통령안보담당보좌관 겸 국가안보회의 서기. 러시아 로스토프주 노보체르카스크 출생으로 73년 아르마비르스크사관학교 공수병학교를 졸업했다. 지난 81년부터 2년간 소련군 제345공수사단 사단장으로 아프가니스탄전쟁 참전. 1985년부터 91년까지 툴라공수사단 사단장으로 근무했다. 1991년 8월 보수세력 쿠데타 당시 파벨 그라초프 공수사령관의 요구에 따라 옐친을 지지하는 의회의 방어부대로 출동했다. 이듬해부터 95년까지 몰도바 트란스드니에스트르 주둔 러시아연방 제14군 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몰도바인과 러시아인간의 내전을 종식시키는데 공헌, 국민적 영웅으로 등장했다. 95년 5월 군복을 벗고 12월 국가두마(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해 지난 6월 대통령선거에서 3위를 기록. ▼ 체르노미르딘…정비공출신 에너지 산업 대부 ▼ 빅토르 체르노미르딘(58)은 옐친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있는 러시아 연방 총리. 오렌부르그주 출생으로 1957년 오렌부르그주 오르스크정유공장의 정비공으로 시작해 작업반장 직장 기사를 거쳐 1973년 공장장까지 승진. 1961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했으며 66년 쿠이비셰프종합기술대를 졸업. 78년부터 82년까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근무.튜멘가스프롬 회장과 소련가스공업부 차관을 거쳐 85년부터 5년간 소련가스공업부 장관 역임. 1989년 소련 최대 기업인 가스프롬의 회장에 취임했다. 1992년 5월 구소련 와해 후 러시아연방 에너지 담당 부총리에 임명됐으며 그해 12월 급진적인 시장경제개혁을 추진하던 예고르 가이다르 총리서리가 인민대의원회의 보수세력의 압력으로 물러나게 되자 뒤를 이어 총리에 선출됐다. 러시아 연료에너지산업의 대부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