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 같으면 잔치 분위기일 무역의 날(30일)이 올해는 우울하기만 하다. 올 수출증가율은 급감했으나 수입은 두자릿수로 증가,무역수지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교역성적표는 영 엉망이다. 무역의 날을 맞아 만난 具平會(구평회)한국무역협회장은 『마음이 더욱 무겁고 국민들에게 죄송한 생각이 앞선다』고 말했다. 작년 무역의 날엔 최초로 수출 1천억달러를 달성, 축제분위기였으나 올해는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회장은 『오늘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데 국민들이 합심만 한다면 수출한국의 장래를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 경제의 단면을 드러내 주는 수출에 그늘이 져 마음이 무겁다』고 말문을 연 뒤 『지금이야 말로 과거의 「양위주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33회 무역의 날을 맞는 감회를 말씀해 주시지요. 『한국경제가 30여년간 눈부신 성장을 해오는 동안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고비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정부주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지금은 경제규모가 급신장해 정부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또 국제환경이 워낙 급변하다보니 국내 경제상황만 손질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요』 ―올 한 해의 교역성적표를 작성해 보신다면…. 『올들어 10월말까지 수출은 1천65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6%증가에 그친 반면 수입은 1천2백33억달러로 10.6%나 늘었어요. 특히 수출이 예상에 크게 못미쳐 당초 개선될 것으로 기대됐던 무역수지가 오히려 악화해 작년의 연간적자 1백1억달러에서 1백68억달러로 확대됐습니다』 ―수출부진의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먼저 주요품목의 수출가격이 하락하고 해외시장의 재고 누적으로 수요가 위축된 것을 들 수 있어요. 수출주력품목인 반도체 16메가D램 가격이 5분의1수준으로 폭락하는가 하면 해외재고가 누적돼 해외수입수요가 작년의 18%증가에서 올해는 4%증가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근본 원인은 국내의 고비용 저효율구조에 있다고 봐야죠』 구회장은 세계시장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세계 반도체시장을 비관적으로 보는 의견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업계만 연초까지도 호언장담하다가 뒤늦게 낭패를 보았다는 것. ―수출의 구조적인 취약점도 간과해서는 안되겠지요. 『반도체 철강 등 수출주도품목이 예상외로 가격이 하락하기도 했지만 수출구조가 취약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자 자동차 화학 기계 등 4대품목이 총수출의 70%를 점유하는 등 일부품목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습니다. 또 아직까지 우리 상품은 고급품보다는 중저가라는 대외이미지가 남아있고 자체 브랜드의 수출비중이 52%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우리 경제는 지금 3고(高)다, 4저(低)다 하는 등의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만….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에서 효과적으로 수출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수출산업에만 지원을 국한하지 말고 서비스산업을 포함한 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겠지요. 또 중국 아세안 등 후발개도국의 추격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수출구조에서 탈피해 기술중심의 선진국 제품과 품질을 경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품질혁신과 기술개발 투자확대, 국내기업간 협력, 국제적 전략적제휴 등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지난 50년대 LG상사 해외세일즈맨 1호로 무역일선에서 뛰어온 구회장은 40여년 경력의 원로 상사맨답게 『현실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꿔 제2의 도약을 준비할때』라고 역설한다. 『현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기업인의 의욕을 고취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지금까지는 기업하는 사람은사욕(私慾)만 채우려한다는 왜곡된 시각이 많았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불만이 많은데 정책당국자는 듣는체만 하지 실제로 반영해주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기업이 잘되면 나라도 잘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주었으면 합니다. 미국만 봐도 한 기업의 이슈가 정부의 통상정책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내년엔 수출이 좀 나아질까요. 『해외수요가 조금 나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성장률은 올해와 비슷할 것으로 보이지만 작년의 누적재고가 올해 대부분 해소됨에 따라 수입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동남아는 자체 개발수요가 계속 유지돼 내년에도 높은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중남미 경제도 멕시코 페소화위기 이후 안정을 찾고 있고 동구권도 견실한 성장을 계속할 것 같습니다』 ―시장개방의 진전과 함께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이 가속화하면서 국내산업의 공동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제조업의 해외이전은 시장개방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임금 등 국내제조원가와 물류비 등이 너무 올라 국내기업환경이 악화됐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해외투자는 시장확보나 기술습득 생산코스트절감 등 나름대로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국내기업환경의 획기적인 개선이 있기 전에는 제조업의 해외진출은 당분간 계속되리라 봅니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블루라운드나 경쟁정책 등을 다루는 라운드는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우선 블루라운드는 개도국의 반대가 심하기 때문에 WTO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무역관련 기구에서 논의하기보다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지속적으로 다룰 것으로 보입니다. 경쟁정책은 WTO각료회의를 통해 전문 작업반을 설치하는 한편 투자 부정부패방지 회계기준 등의 문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내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고요』 구회장은 월드컵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최근 개회식은 한국에서, 결승전은 일본에서 개최키로 한 결정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우리는 명분을, 일본은 실리를 택했다고 보는 관점이 많습니다만 결승전 등 경기개최에 따른 수입배분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개회식을 유치함으로써 월드컵 주최국으로서의 국가적 위상을 높였으니 배분에 대한 논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이 남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