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은 당초 예상됐던 대로 노동계의 요구보다는 재계의 요구사항이 더 많이 반영된 내용으로 확정됐다. 우선 재계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수년동안 노동계의 반발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무노동무임금 법제화, 파업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자신들의 당초 요구를 거의 모두 관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노동계의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도 복수노조금지 교원단결권금지 노조정치활동금지 등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금지조항들이 대부분 삭제되는 큰 수확을 얻었다. 다만 갖가지 단서조항과 유예기간이 따라붙어 「갈증」을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노동법개정안 마련과정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공무원 교원의 노동3권 보장 문제는 남북분단 등의 현실을 감안해 「공무원은 보류」, 「교원은 2년 유예 후 직원단체 형태로 허용」이라는 절충안 형태로 매듭이 지어졌다. 제삼자개입금지 조항은 삭제됐으나 「법적 권한 없는 자의 개입을 금지」하는 새로운 조항이 신설돼 현실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게 됐다. 물론 그동안 재계의 반발이 거셌던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수준도 상당한 변화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개정안을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현행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보호조항이 대부분 삭제돼 앞으로 근로조건이 상당히 빡빡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노사관계개혁위원회 공익대표들이 지난달 7일 채택한 이른바 「공익안」을 뼈대로 하고 있지만 정리해고 변형근로 대체근로 등의 세부내용은 경영계의 요구안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 복수노조허용, 교원단결권 허용의 경우 유예기간이 공익안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노동부는 당초 노개위 공익안을 최대한 존중하고 변형근로제 등 일부 조항만 수정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경제관련 부처들이 재계의 당초 요구수준을 고집, 결국 재계의 의견이 대폭 반영됐다. 정부도 이번 개정안이 「국가경쟁력」과 「노동기본권 및 근로자 삶의 질 향상」이라는 두 축(軸)중 국가경쟁력 쪽으로 기울었음은 인정하면서도 이번 개혁이 기업의 고(高)비용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들어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도입 등으로 당장은 고용불안과 근로조건 악화가 우려될 수 있으나 결국은 기업의 「체중조절」을 통해 대다수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복지향상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다. 어쨌든 이번 노동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노사관계 뿐만 아니라 경영여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등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 분명히다. 우선 당장 내년부터 민주노총이 합법단체가 됨으로써 노동계의 입지가 상당히 강화되고 노동계 내부도 지각변동을 겪게 될 전망이다. 또 사용자들도 대체근로 허용 등으로 노사협상에서 상당한 힘을 갖게 되고 정리해고 변형근로제 등의 도입으로 노무관리 부담도 덜 수 있게 됐다. 따라서 당장은 이번 법개정안에 대한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지만 현실과 동떨어졌던 낡은 제도가 새 틀로 바뀌고 노사 모두 힘을 얻게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노사관계가 한결 안정될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李基洪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