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씨(62)일가 16명과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씨를 포함한 17명의 북한탈출경로는 아직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동토(凍土)에서 따뜻한 남쪽 홍콩까지의 28일에 걸친 엑서더스」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김씨 일가족이 살던 함북 회령군 남문리는 두만강 접경지역. 치밀하게 탈출준비를 마친 이들 일행은 10월26일 오전2시경에 집을 나서 불과 두시간만에 두만강변에 도착했다. 탈북의 성패를 결정할 첫번째 관문은 최근 탈북자들을 막기 위해 경비가 대폭 강화된 두만강을 어떻게 건너느냐는 것. 두만강만 잘 건너면 눈앞에 있는 중국 길림성 용정(龍井)에 닿고 그때부터는 미리 포섭해 둔 조선족들의 도움을 받아 「탈주의 남행열차」를 탈 수 있을 것이기 때문. 특히 회령에서 공식적으로 두만강을 건너려 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삼합(三合)세관을 피해야 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탈주의 실무를 책임진 김씨의 장남 금철씨(30)가 홍콩정청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이들 일행은 두만강변에 도착한 직후인 10월26일 오전4시경 국경경비병의 눈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는데 성공했다. 금철씨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천운(天運)도 따랐다. 이 지역은 두만강에서도 하류의 지류(支流)여서 강폭이 수십m로 좁은 편인데다 평소에도 물이 깊지 않은 곳인데 당시 강물의 깊이는 어른의 아랫배에 찰 정도여서 어린이들까지 강을 건너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삼엄한 경계를 펴는 경비병을 따돌리는 데는 뇌물제공 등 치밀한 준비가 선행돼야 했다. 아무리 경비를 강화한다 해도 북한 주민들이 먹을거리를 구하거나 밀무역을 하기 위해 경비병들에게 뇌물을 주고 중국에 잠깐 다녀오는 일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탈주를 처음부터 기획한 사람은 김씨의 장인으로 미국 뉴욕 프러싱에 사는 재미교포 최영도씨(79·목사). 최씨는 수년전부터 친지방문 명목으로 자주 북한을 드나들며 딸 현실씨와 사위 및 외손자 금철씨 등을 설득해 탈북계획을 짰다. 구체적으로 최씨가 일을 진행시켰고 인민군 분대장 출신으로 사회안전부와 연결고리가 있는 금철씨가 사회안전원 최씨의 설득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용정에 도착한 이후 약 4주일간에 걸친 이들의 홍콩행은 중국대륙 수천리를 종단(縱斷)하는 대장정이었다. 미국과 서울의 친척들이 미리 채용한 조선족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천만다행이었으나 노인과 어린이까지 포함된 대가족이 움직이다 보니 곳곳에 번득이고 있을 북한 「탈주자 체포조」의 손길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들이 중국 국내선 비행기나 빠른 열차를 이용하지 못하고 어렵고 먼 길을 택한 것도 바로 그런 안전문제 때문이었다. 용정을 거쳐 심양(瀋陽) 북경(北京) 광주(廣州) 심천을 거쳐 11월23일 홍콩에 도착할 때까지 이들은 때로 중국농가에서 품을 팔아 숙식을 해결하고 여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이 기간동안 중국공안당국의 제지가 별로 없었다는 점. 김씨 일행은 중국당국이 사실상 북한인들의 탈출을 방조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회령을 떠난지 28일만인 11월23일. 「천로역정」끝에 이들은 북한과 중국의 손길을 벗어난 안전지대 홍콩에 도착, 한국으로 삶의 공간을 바꿀 채비를 마쳤다. 〈金基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