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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민속을 알면 지혜가 보인다

입력 | 1996-12-12 19:57:00


내가 몸담고 근무하는 곳은 국립민속박물관이란 국가기관이다. 가끔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국립민속박물관을 가자면 열에 여덟 아홉의 기사는 어디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경복궁에 있으니 그리로 가자면 진작에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지 하고 불쾌한 모습으로 투덜거린다.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국립민속박물관은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일본이 우리의 주권을 빼앗고 식민지 통치를 자랑하던 그들의 소위 시정기념관이란 곳을 인수해서 그해 4월 25일 개관해 무려 50년의 연륜을 쌓은 박물관인데도 말이다. ▼박물관 위치 거의 몰라▼ 최초 개관 당시에는 남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가 1950년 6.25 동란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흡수통합되어 명맥이 끊겼다가 1966년에 와서야 경복궁에 있는 수정전 건물에 한국민속관이란 간판을 달고 불씨를 살렸다. 그리고 1975년 12월 비록 문화재관리국 산하기관이지만 역시 경복궁 내에 있는 옛 현대미술관을 얻어 한국민속박물관으로 독립건물을 마련해 사회교육기관으로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옛 일제의 총독부 건물로 옮겨가자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 내부를 개조하여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완전 독립, 1993년 2월에 개관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까 경복궁 내 동북부에 우뚝 솟은 청기와 지붕건물 3동이 함께 붙어있는 모습이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이다. 그래서 국립민속박물관이 이곳에 자리잡은지 이제 겨우 3년 10개월여가 지났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국립민속박물관이 탄생되었으니 일반 국민이 그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볼 때 첫째는 민속박물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 부족에서 일어난 일이고 다음으로 위치가 경복궁 내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분석된다. 하기야 조선 5백년의 정궁이었던 경복궁과 이제 겨우 4년미만의 국립민속박물관이 이름을 비교하는데 있어서 손쉬운 이름이 경복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경복궁 부설 민속관이야 될 수는 없는 일이니 앉아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국립민속박물관을 알리기 위한 갖가지 행사를 마련하면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사계절 텃밭을 운영하여 모내기 벼베기 보리타작 등을 계절에 따라 실시함으로써 일반 관람객에게 매우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보리타작을 재래식인 도리깨로 하다보니 동참한 어떤 관람객은 처음에는 서툴게 다루다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자 놓을 줄 모르고 도리깨질을 했다. 정말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의 장이 마련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도리깨질」관람객 신명▼ 왜 그렇게 신명나게 도리깨질을 하느냐는 질문에 타작에 의한 일종의 쾌감과 함께 현대병인 스트레스가 확 가신다는 대답을 듣고 보니 정말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농경의 힘든 노동이지만 신명나게 일함으로써 노동이란 개념을 탈피하고 그것이 바로 삶의 부분이라는 관념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 민속이란 바로 이렇게 우리의 본 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조 유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