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甲植기자」 『동행한 대원이 더이상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다리를 붙잡고 울고 싶더라구요. 한발짝만 삐끗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좁은 눈길 곳곳에 있는 크레바스 때문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방송 사상 최초로 해발 7천3백m의 무산소 등반촬영에 성공한 KBS영상제작국의 카메라맨 이거종씨(44)는 『이러다 정말 죽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 9월26일 오전 2시반경 그는 팀닥터 조경기교수(아주대 의대)와 함께 히말라야의 제8위봉인 마나슬루(8,163m)의 6천5백m지점에 설치된 캠프2의 침낭속을 빠져나왔다. 4시경 정상도전에 나설 엄홍길씨와 대원들보다 앞서 올라가 정면에서 이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기 위한 것이다. 등반대를 따라가다보면 꽁무니만 촬영되는 데다 다섯 발짝 이상 처지면 대열에서 낙오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좋은 화면을 잡겠다는 욕심에 혼자 걸음을 재촉하던 그는 크레바스를 만났다. 이씨는 『몸이 구덩이로 쑥 빠진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보니 몇십m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다』며 『어떻게 사지에서 벗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털어놓았다. 히말라야의 8천m 이상 봉우리는 고소병과 크레바스 설맹(雪盲) 동상 등으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전문산악인도 고개를 내젓는 위험지대다. 더구나 마나슬루는 72년 등반대원 5명이 사망하는 악연으로 한국의 산악인에게는 「마의 산」으로 불린다. 마의 산에 도전한 이씨의 장비는 산소통 호흡장치 물통 비스킷 초콜릿 호박죽 등 생존장비와 디지털카메라 테이프 20개. 그는 『촬영의 편의를 위해 산소통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셰르파의 지원이 없어 7천3백m에서 촬영을 마쳤지만 다음 기회에는 정상에 올라 산악등정의 생생한 숨결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78년 KBS에 입사한 이씨는 「히말라야 오지를 가다」 「독도 365일」 등 자연다큐와 교양프로에서 베테랑 카메라맨으로 활약해 왔다. 무산소등정으로 엄씨의 마나슬루 정복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영봉 마나슬루에 서다」는 내년 1월1일 방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