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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선정 96년 10대뉴스/국내]

입력 | 1996-12-26 20:24:00


▼ 4.11총선 서울 첫 與大 기록 4월11일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1백39 △국민회의 79 △자민련 50 △민주당 15 △무소속 16석을 얻었다. 신한국당은 과반수(1백50석)에 이르지 못했으나 사상최초로 서울에서 여대(與大)를 이뤘으며 총선후 야권의원을 영입, 과반수를 만들어 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조에 나섰다. ▼ 2002월드컵 한일공동개최 5월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집행위원회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키로 결정했다. 이어 11월7일 FIFA실무위원회는 대회공식명칭을 「FIFA월드컵 2002 KOREA―JAPAN」으로 하고 개회식은 한국에서, 결승전은 일본에서 갖기로 확정했다. ▼ 한총련 연대점거 과격시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들은 8월13일 연세대에서 통일대축전행사를 치르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과학관 등을 점거하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8월20일 대학생 5천8백48명을 연행, 이중 4백62명을 구속했다. 해산작전중 金鍾熙(김종희·20)이경이 학생들이 던진 벽돌에 맞아 숨졌다. ▼ 북한 잠수함-무장간첩 침투 9월18일 강릉해안에서 좌초한채 발견된 북한잠수함으로 무장간첩 26명이 침투했다. 군은 49일간의 소탕작전에서 1명을 생포, 13명을 사살했고 11명은 피살체로 발견됐으나 1명은 미확인으로 끝났다. 작전에서 아군장병 11명 등 16명이 희생됐다. 군의 대처가 비판받았으며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됐다. ▼ 불황속 명퇴바람…외채 증가 본격화한 경기침체, 1천억달러를 돌파한 외채, 예상의 2배(2백20억달러)를 훌쩍 넘어버린 국제수지 적자 등 올해 우리 경제의 성적표는 낙제점이하다. 기업들의 감량경영으로 「명예퇴직」이란 말이 보통명사가 됐다.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까지 바꿔 경제회생에 힘을 쏟았으나 역부족. 90년대들어 가장 우울한 한해였다. ▼ 舊총독부 건물 완전철거 11월13일 커다란 굉음과 함께 건물의 북벽 잔재가 무너지면서 일제가 한반도에 남긴 가장 큰 「정신적 말뚝」이었던 구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전 철거됐다. 일제가 한반도의 영구지배를 위해 건물을 세운지 꼭 80년만의 일이었다. 잔해조차 완전히 치워진 역사의 현장 너머로 광화문과 서울 시내 중심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 김경호씨 일가등 17명 탈북 김경호 최현실씨(57) 일가족 등 17명이 탈북, 44일만인 12월9일 서울에 안착, 자유의 품에 안겼다. 이들은 10월26일 두만강을 건너 용정 심양 북경 심천을 거쳐 홍콩으로 밀입국한 뒤 한국망명을 신청, 꿈을 이뤘다. 이들의 탈북은 미국에 사는 최씨의 부모 등 가족의 치밀한 계획과 지원에 따른 성공사례였다. ▼ 선진국 관문 OECD 가입 선진국 진입의 관문격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문턱을 드디어 넘어섰다. 국회동의를 거쳐 12월12일 프랑스 외무부에 가입서를 기탁함으로써 29번째 회원국으로 등록 절차를 마쳤다. 가입의 이점 못지않게 시장개방의 부담이 커졌다. 경제규모에 맞춰 하위권에 처져있는 보건 교육 등 삶의 질 향상이 향후 과제. ▼ 두 前대통령 「세기의 재판」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12월16일 12.12 및 5.18사건 항소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3월11일 1심이 시작된지 9개월5일 만이었다. 전, 노씨는 상고를 포기했으나 검찰이 상고해 형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1심에서는 전, 노씨에게 사형과 징역 22년6월이 선고됐었다. ▼ 노동법 개정안 기습 처리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12월26일 국회에서 기습 처리됐다. 4월23일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노사개혁 선언과 함께 노사관계개혁위가 발족, 노사간 협상을 벌였으나 단일안 마련에 실패했다. 결국 정부가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했고 신한국당은 정부안중 정리해고제 복수노조에 관한 일부 조항을 손질해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