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특징은 어찌보면 다양화현상의 확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의 다양화는 사회의 혼돈과는 성격을 달리할 것이나, 사회질서와 효율의 유지에는 용이하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앨빈 토플러 같은 사람은 다양화 사회에서는 다수결의 도출이 쉽지 않은 만큼 다수결원리를 축(軸)으로 하는 정치적 민주주의는 재검토되어야 할 문제라고 말한 적도 있다. 사회 공동의 선(善)의 의지 또는 사회 공동의 긍정적 의지를 도출 형성하고 이를 실천하는데는 사회 구성원의 예지(叡智)의 결집이 요청된다. 사회 공동의 선 내지 긍정적 의지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동생활의 효율과 도덕성을 높이는 질서, 그리고 사회의 집단생산성을 높이는 길을 뜻한다. 독재체제하에서는 그 합리성과 도덕성은 차치하고 강압적인 제도적 장치나 명령 지시에 의해서 사회적 질서와 효율을 유지할 수가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바탕이 되고 있는 다양화사회에서는 제도적 장치에 의해서 질서를 유지하기에는 스스로 그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어떠한 제도의 설정에는 국민의 합의가 필수적이며 민주주의국가의 국민성향은 자율적 질서유지를 바라는 경향이 강하다. 이 자율의식이 바로 시민정신 또는 공동체의식이라 할 것이다. 만약 같은 문제의 해결이 제도보다도 자율정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자유본질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존 스튜어트 밀도 그의 「자유론」에서 자유란 사회로부터 초연한 자신만의 자유의지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련속에서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상정(想定)하였다. 밀은 개인의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더라도 그의 자유로운 동의와 참여가 있는 것들을 자유의 영역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그는 타인의 행복을 빼앗으려는 기도도 없고 행복을 얻으려는 타인의 노력을 방해하는 일이 없는 한에서 자신이 선택하는 방법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하였다.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속에서의 자유를 상정한 밀의 자유정신은 자유속에서의 시민정신의 의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차피 미래를 향해서 사회의 다양화 민주화는 더욱 진전되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의 영속성을 위한 질서의 유지, 사회번영을 위한 효율과 집단생산성의 향상은 오로지 투철한 시민정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영국이 불문헌법(不文憲法)의 나라인데도 선진국으로서의 국가질서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깊이 뿌리내린 시민정신의 소치라 할 것이다. 투철한 시민정신이 팽배한 사회는 시민정신에 의해서 사회가 조직화되어 사회의 효율과 도덕성을 함께 유지해 나가게 된다. 그런 사회는 또한 필요악(必要惡)인 제도의 굴레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가 되게 마련이다. 시민정신은 제도를 능가하는 위력을 지니게 된다. 비근한 교통질서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교통법규의 적용에 의한 모든 길위 모든 차량의 교통질서 유지란 불가능한 것이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길에서 모든 차량운전자가 준법(遵法)호양(互讓)의 시민정신을 발휘할 때 비로소 교통질서는 확립될 수가 있다. 시민정신이란 멀리에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한치의 양보, 한낱의 희생, 한뜻의 협동이 바로 시민정신이다. 李 賢 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