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소감=김지은 ▼ 달걀을 삶아 본 사람이면 누구나 반숙 삶기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자칫하면 팍팍하게 익어 버리는 노른자위 때문입니다. 그런데 달걀을 먹어 본 사람이면 누구든 반숙이 가장 맛있다고들 합니다. 껍질을 톡톡 벗겨 내고 살짝 베어 물면, 말캉말캉한 흰자위를 넘나들며 터져나오는 노른자위는 양분많기로도 첫째갑니다. 날달걀은 차고 입에 낯설며, 완숙은 탈나기 쉽다지만, 반숙은 그렇지 않습니다. 입술을 요리조리 비틀며 벌이는 따끈한 실랑이는 반숙 먹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재미입니다. 저에게 동화쓰기는 다름아닌 달걀 반숙 삶기입니다. 어린이와 어른, 상상과 현실, 재미와 깨달음 사이에 놓인 팽팽한 긴장이 글쓴이의 손끝에서 가늠되어야 하는 아리송하고 어려운 반숙 삶기입니다. 잘된 반숙은 아기의 첫 먹을거리가 되는가 하면 앓는 어른의 입맛을 달래는 데도 쓰입니다. 잘된 동화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굳기 쉬운 생각을 삶아 내느라 걸핏하면 냄비를 엎어가며 서툰 국자를 흔드는 저는 이제 겨우 앞치마를 두르게 된 어설픈 요리사 지망생일 뿐입니다. 부끄럽기만한 이야기를 읽어 주시고 동화의 부엌에 불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물 끓이기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신 여러 선생님, 함께 앞날의 참된 동화를 고민해 온 별똥모임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까다로운 달걀 감별사인 동생, 힘들 때마다 다시 국자를 쥐어주던 친구와도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삶을 반숙처럼 요리하는 지혜를 지니신 할머님과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께 모든 기쁨을 드리며 첫마음 잊지않고 부지런히 걸어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72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철학과졸 △이화여대 철학과 대학원 재학중 ▼ 심사평=정채봉 ▼ 좋은 동화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희망의 힘이 느껴지고 사랑의 힘이 느껴진다. 생명의 맥박을 감지케도 하고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한다. 여기 좀 봐 줘요, 하고 붙들지 않는 데도 청정한 눈길이 느껴져서 돌아보면 풀섶에 꽃 한송이가 피어 있어서 배시시 미소가 물리듯이 좋은 동화에서는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끌림이 있는 것이다. 1백86편의 응모작품 가운데 힘이 느껴지고 자연스러운 끌림이 있어 최종선에 오른 작품은 「무지개를 업고 온 아이」(성미정) 「늙은 의자의 꿈」(이수애) 「바람속 바람」(김지은) 「큰 나무의 기도」(김계원)였다. 이 중 「늙은 의자의 꿈」과 「큰 나무의 기도」는 동화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 의식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에 비해 구성과 전개가 너무 평면적이었다. 특히 「늙은 의자의 꿈」은 초반의 자연스러움이 종반에 가서 부자연스러움으로 역전되고 만 점이 아쉬웠다. 「무지개를 업고 온 아이」와 「바람속 바람」은 신선한 제재에 작품의 완성도 또한 높았다고 본다. 그런데 「무지개를 업고 온 아이」에 있어 일곱살배기답지 않은 화자의 눈 높이와 환상의 뿌리가 약한 점이 흠이었다. 물론 「바람속 바람」의 숨가쁜 전개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만한 능력의 작가를 만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는 연하인사를 받았다. 당선자는 물론 아깝게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분들께도 내일 또 뛸 생각보다는 오늘 꾸준히 걸어주기를 당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