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소감=이 헌 ▼ 기쁘다. 이 작품을 선정해준 심사위원, 그리고 이 작품과 이 작품의 무대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이 작품은 새로운 세계관을 위한 현대적 제의(祭儀)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10대 때 썼던 글에서도 오늘의 내가 피력하는 사상의 단초가 보이고 새로운 로마에 대한 통찰력을 가졌던 시저의 글이나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등에서도 「내 인지와 인식의 뿌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일반적인 패턴이 보인다.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미래의 인간들 역시 지금의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과학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겠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변화는 너무 미미할 테니까…. 오늘의 한국의 연극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과 연구를 게을리하고 선정적인 스토리 위주의 극만을 양산해대고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시금 새로운 오태석 이윤택 기국서가 등장하여 페터 한트케와 셰익스피어 제위를 목조르고 세계 연극사를 두드려대야할 때다. 빠른 시일 안에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려 한국 현대극의 완전한 재미를 대중들과 관계자들에게 선물하겠다. △58년 전북 군산 출생 △87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 졸업 △아트포럼 커뮤니케이션 대표 ▼ 심사평=이윤택 ▼ 「호모 사피엔스 누드 크로키」를 당선작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작가가 주장하듯이 그렇게 새로운 연극관은 아닌, 이미 70년대부터 우리 연극의 일각에서 제기되어 온 인식 방법론으로서의 연극에 대한 재발견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작가가 밝힌 바와 같이) 상당한 부분을 페터 한트케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새롭다기 보다 오히려 구태의연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이 결국 당선작으로 남게 된 이유는 작가가 남다른 역량과 미덕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일단 문학적 읽기의 단계에서 독자적 논리, 구성력 문체를 모두 갖추고 있다. 언뜻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일 수 있는 잡다한 사변들을 자기식의 극적체계로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아울러 이런 문학적 읽기가 곧 흥미진진한 연극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문학성과 연극성을 고루 갖춘 한 편의 희곡을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일반적인 극작 구성을 벗어나면서도 연극에 대한 전체적 인식능력을 갖추고 있는 신인(新人)을 발견한 셈이다. 한 10년 이런 식의 독자노선을 유지하면서 연극작업을 지속한다면 우리 극계도 「인식의 연극」장르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페터 한트케, 기국서, 그리고 이헌의 연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