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永泰기자」 대기업에 근무하는 K씨(32)는 지난해 8월 어느날 아침 신문을 펼쳐들고는 몹시 당황했다. K씨가 읽던 신문에 「남북한 통일자판이 마련됐다」는 기사가 실린 것. 내용인즉 94년부터 2년동안 남북한 학자가 해마다 연변에서 모여 논의한 결실로 △한글자판배치 △컴퓨터용어 등 한글 컴퓨터처리 4개 분야의 통일안을 마련했다는 것. 정보화시대, 남북통일에 앞서 컴퓨터언어부터 통일하자는 노력에는 갈채를 보내야 마땅하지만 K씨는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새로운 통일자판이 마련되면 애써 익힌 두벌식을 버리고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 K씨는 『한글자판에 관한 한 나처럼 우여곡절을 거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동안 자판을 익혀왔던 과정을 떠올린다. 처음 한글자판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입학 전인 80년 겨울 무렵. 당시만 해도 타자기가 귀하고 비싸던 터라 돈을 내고 학원에 다니면서 네벌식 자판을 익혔다. 웅변 주산처럼 타자를 배우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타자실력을 쓸 곳은 없었지만 학원에 다니게 된 것. 몇년 후 대학생이 되면서 네벌식 타자기 한 대를 구입해 번역아르바이트에 요긴하게 썼다. 그러나 대학 2년을 마치고 군대에 간 후 K씨는 자판 때문에 몹시 당황했다. 군대에서 모두 국가표준인 두벌식 타자기를 사용했기 때문. 행정반에 배치된 후 하루에도 수십장씩 행정서류를 작성하는 업무를 위해 몇 주일 동안 밤잠을 설치며 두벌식을 새로 익혀야만 했다. 복학 후 PC가 널리 보급되면서 K씨도 흑백 286컴퓨터를 한대 구입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을 실력가로 여겼기 때문에 타자프로그램을 구해 세벌식을 부지런히 익혔다. 세벌식은 초성 종성의 자음을 하나의 키로 처리하는 두벌식과 달리 초성 종성을 다른 키로 누르기 때문에 속도가 다소 빠르다는 게 장점. K씨는 세벌식을 쓴 덕분에 분당 5백타 이상의 실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K씨는 취직하면서 또다시 혼란을 겪는다. 회사에서 도입한 그룹웨어가 어처구니없게도 두벌식으로만 써야하기 때문에 한동안 잊었던 두벌식을 다시 쓸 수밖에 없게 된 것. 남북통일자판을 보고 K씨는 다시 한번 놀란다. 자판 26자 중 17자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26분의 17이라는 큰 변화라면 기왕 바뀔 바에야 더욱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바뀌면 어떨까. 자주 쓰이는 자음과 모음의 위치가 왠지 엉성하다』는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