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현, 세계를 구름처럼 떠도는 사나이」를 읽고난 뒤 나는 한동안 망연자실한 채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네. 우리 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네. 그러면서 문득 동양역사의 한 큰 인물이 피터현과 함께 뇌리에 떠올랐다. 그가 바로 칭기즈칸이다. 13세기 초반부터 정복전에 나서 유럽의 동북부 전역을 휩쓸어 정복했던 칭기즈칸. 몽골군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나라의 국민들은 밤마다 그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으므로 유럽인들에게 용맹스런 동양인의 공포를 가르쳐준 칭기즈칸. 그러나 마상(馬上)에서 세계를 정복할 수는 있어도 지배할 수는 없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남겼던 칭기즈칸. 그가 유럽을 지배할 수 없었던 것은 정착민문화의 결여, 그리고 정복한 땅의 사적 재산 개념과 무자비한 약탈의 연속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비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칭기즈칸이 이루지 못한 문화적 유럽정복을 이룬 사람이 바로 피터현이라는 생각을 이 책은 갖게 만든다. 무기를 갖지 않고 가슴으로 유럽을 정복했던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는 몽골군처럼 오줌에 담가 단단하게 가공한 말가죽 옷도 입지 않았고, 민첩한 마상재(馬上才)도 갖지 않았고, 가죽방패도 갖지 않은 동양의 황색선비였을 뿐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달러가 아닌 낡은 시집 한권을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이후 전 유럽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언론인과 작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카뮈를 비롯한 전 유럽의 귀에 익은 유명예술인 치고 그와 만나지 않은 인사는 없었다. 루스벨트대통령 손녀딸과의 동거생활, 그리고 유럽생활 9년동안 나의 따뜻한 침대에는 항상 미인들이 있었다는 너무나 솔직하고 대담한 고백은 충격적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양사람, 특히 한국인이라면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유럽에서 한국인의 긍지와 자존심을 심는데 손색없었던 황색선비였다. 그래서 감히 그를 칭기즈칸 다음으로 유럽을 정복했던 동양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에서 우리나라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그를 만나보면 뜻밖에도 말수가 적은 분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그만큼 깊은 고독이 있다. 김 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