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발레공연을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88년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초빙돼 다시 서울에 온 뒤 지금까지 한국의 발레단과 함께 일을 해오고 있다. 서울에서 9년을 살았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한국말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인상은 거의 간접적으로 얻게 된 것들이다. 나는 차가 없기 때문에 서울에서 움직일 때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이 편리하기도 하지만 택시를 탈 경우 「운전사 마음대로의」 서울 택시 시스템이 주는 언짢음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는 것은 재미있고 또한 교훈적이다. 지하철은 그 도시와 그 속에 사는 시민들의 행동양태를 보여주는 일종의 「도시 축소판」이다. 내 눈에 비친 서울 지하철 풍경을 묘사해 보겠다. 빈 전동차가 역에 들어와 문이 열리면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으려고 급히 뛰어 들어간다. 서울시민에게는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듯하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스쿨버스를 타려고 열심히 뛰어 올라가던 어린 학생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는 철이 들면서 그런 모습이 쑥스럽고 어른답지 못한 행동임을 스스로 깨닫는다. 지하철 안에서 나는 서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앉았을 경우 종종 난감한 일을 당하기 때문이다. 나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 하나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소리 높이 외치며 팜플렛을 나눠주는 전도사들이다. 스위스제 군용칼에서 앨범에 이르기까지 별별 물건을 다 들고 올라오는 행상인들은 승객들의 눈길을 끈다. 지하철을 자신들의 활동공간으로 이용하는 사람 수에 있어서 세계의 어느 지하철도 서울 지하철을 따르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나는 서울 지하철이 그런 행상인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종종 궁금해진다. 다른 얘기지만 문화란 관습과 달리 대도시에서 만들어진다. 프랑스의 문화는 파리, 영국의 문화는 런던, 미국의 문화는 뉴욕과 할리우드가 상징하듯이. 한국에는 나를 매료시켰던 옛 장례풍습처럼 독특하고 매력적인 관습들이 많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를 대표할 서울의 문화는 무엇일까. 분명 김치와 한복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 나에게 따뜻한 인간관계와 「하나됨」이라는 귀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로이 토바이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