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12〉 아저씨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소개하던 날 서울 하늘에 쌍무지개가 떴고, 제가 아저씨의 도움으로 「분노의 포도」를 읽던 날 아빠 회사의 노동자들이 그 작품 속에 나오는 농민들처럼 성난 얼굴로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명작의 고향」속에 나오는 작품마다 제가 기억하는 제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처음 아저씨께 편지를 쓰고 싶었던 것은 아저씨가 「위대한 개츠비」를 소개했던 날, 그날 글에서도 그랬지만 그 전에도 아저씨가 「비극적이고도 정열적」이란 말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아저씨께 편지를 쓰고 싶은 때가 있었습니다. 구십칠회째의 「명작의 고향」에 아저씨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을 소개했던 날 밤이었습니다. 어려서 양친을 잃고 이상한 친척집을 도망쳐 나와 초라한 아파트에 몸을 숨기고 있는 바렌카라는 불행한 운명의 소녀와 어느날 그렇게 새처럼 날아온 그 불행한 소녀에게 무한한 애정과 격려를 기울이는 가난한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스킨이 주고 받은 편지 형식의 소설이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아저씨는 그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황혼이 깔린 십구세기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초라한 중년의 사나이와 외로운 소녀가 엮어내는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편지라고. 저는 「아름답고 슬픈」이란 말을 더 아름답고 슬프게 느꼈는지 모릅니다. 저는 외롭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은데 말이죠. 그렇지만 외롭고 불행하지 않아도, 연재가 끝난 다음 앞으로 아저씨가 쓰는 「명작의 고향」을 다시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저를 외롭고 슬프게 합니다. 어쩌면 저는 지난 이태 반 동안 아저씨의 글과 아저씨가 소개하는 책으로 제 가슴을 키워왔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스크랩한 아저씨의 「명작의 고향」을 그 속에 나오는 책들과 함께 늘 제 곁에 두겠습니다. 가끔 아저씨의 이름이 생각날 때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 처음 아저씨의 이름을 알았던 때가 생각날 때마다 이 스크랩 북을 열어 보겠습니다. 이제, 안녕. 언제나 아저씨를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매주 화요일 아저씨의 글을 기다리던 소녀가 있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언제나 건강하시고요. 아저씨 얼굴 모르는 채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