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활기가 넘쳐야 할 각 직장의 분위기가 무겁고 어수선하다. 작년부터 기업체마다 감량경영이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노동관계법 날치기통과에 따른 총파업이 계속되면서 제조업 직장은 물론 화이트칼라(사무직)들의 사무실에도 덩달아 냉(冷)기류가 흐르고 있다. S모직 해외영업팀 신모대리(36)는 『예전같으면 새해가 되면 사무실에 「잘해보자」는 기운이 팽배했으나 올해는 전반적으로 뒤숭숭하다』며 『점심시간이나 술자리에 모이면 새로 바뀐 노동법에 대한 얘기가 주된 화제이고 결과는 언제나 월급생활자의 불안한 신분을 한탄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고 말했다. P은행 직원 최모씨(30)도 『요즘 같아선 솔직히 일할 맛이 나지 않아 아침에 출근하면 업무에 대한 생각보다는 신문만 들추게 된다』면서 『동료들간에 「만약 해고되면 뭘 해먹고 사나」하는 농담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변화하는 근무환경 속에서 속이 타는 것은 부서장들도 마찬가지. L기업 최모실장(45)은 『지난 연말 동업계 담당자들의 송년모임에서 「내년에 이 자리에 다시 나올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자조적인 농담도 오갔다』면서 『부서장들은 부하직원들의 침체된 사기를 북돋워야 할 입장이지만 당장 나 자신이 감량경영의 대상이 될 처지여서 부하직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기도 어렵다』고 털어 놓았다. 갈수록 경쟁을 요구하는 환경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모기업체 대리 김모씨(32·경기 광명시 하안동)는 『새해들어 학원수강을 하겠다는 동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한다. 새로운 노동법으로 인해 고용불안 심리가 팽배해지면서 「불명예퇴직」으로 여겨졌던 명예퇴직자를 부러워하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 제조업체 생산부서에서 15년째 근무중인 S기업의 한 직원은 『지난해 명예퇴직으로 동료들이 회사를 떠날 때는 주변에서 안쓰러워했지만 요즘 같아선 그때 퇴직금 이외에 수천만원의 「+α」를 챙겨간 그들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남성들의 고민상담전화인 「남성의 전화」에는 최근 직장의 근무환경변화에 따른 고민을 호소해오는 전화가 하루 평균 30여건에 달한다. 이 상담실의 李玉(이옥·46·여)소장은 『이같은 현상은 요즘 남편들이 과거의 권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안정된 울타리」로 여겼던 직장에서의 위치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데서 주로 나타난다』며 『상담자들 중에는 직장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좌절감이 가정에서 아내와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본다』고 말했다. 〈金靜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