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의 국가위기관리 능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노동관계법의 국회 날치기 처리후 나라안에서는 노동계의 파업이 계속 확산되는 추세다. 그런데도 당국은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민노총 간부 20명에 대한 사전영장을 집행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다. 도심에서 노동자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대학교수 종교계 등 각계각층이 이들에 가세하고 있다. 일반 시민이 시위대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장면에서 87년 「6.10민주항쟁」 때의 국민저항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민심이 정권을 떠난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다. ▼ 앞 안보이는 「노동法 정국」 ▼ 정부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며 그토록 자랑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신규가입국 한국에 대한 첫 업무로 노동관계법 조사에 나섰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조사에 착수했다. 국제적 창피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우방국 언론들도 연일 「문민정부가 권위주의시대로 회귀했다」며 질타를 멈추지 않는다. 그야말로 정부 처지가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출범초 90% 이상의 국민지지와 해외의 칭송을 받던 문민정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정부와 신한국당이 뒤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노동계에 TV토론을 제의하고 법개정 용의를 밝히는 등 강경일변도에서 후퇴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사태의 원인을 엄정하게 분석하고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정부 여당이다. 민주절차를 무시한 날치기 처리가 주인(主因)이고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해 하던 오만방자함이 도화선이다. 날치기처리 직후 『내가 선택한 것으로 책임도 내가 진다. 누가 옳았는지는 선거를 통해 심판받겠다』(李洪九·이홍구·신한국당대표) 『1백55명의 의원이 하나로 똘똘 뭉쳤고 보안이 철저하게 지켜진 게 대견하다. 야당과 물리적 충돌이 없었던 것도 다행 아니냐』(李源宗·이원종·청와대정무수석비서관)는 말이 이를 입증한다. 지나치게 안이하고도 낙관적으로 시국을 예단한 여권의 판단도 사태를 번지게 한 요인이다. 『옛날 야당같으면 국회로 달려가 유리창이라도 깼을 것이다. 요즘 야당은 전의(戰意)가 없다』 『신년연휴가 있기 때문에 노동계의 반발도 곧 진정될 것이다』는 여권핵심부의 얘기가 이를 입증한다. 파업사태가 확대일로로 치닫던 지난 8일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전국무위원과의 오찬회동에서 『여러분들은 문민정부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각오로 사태에 임해주기 바란다』고 전의를 북돋웠다. 노동계의 시위에 강력히 대처하라는 독려에 다름아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에게 「불가(不可)」를 진언한 참모가 한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체면에 매달릴 때 아니다 ▼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대로 김대통령은 우선 참모진을 전면 개편,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작전에는 성공했지만 결과에 실패한 책임자들을 문책해야 한다. 새벽기습처리의 악수(惡手)를 낸 청와대와 신한국당의 주역 4인은 문책에 앞서 스스로 용퇴해야 한다. 법시행 후 재개정을 논의할 일이 아니다. 정권의 체면이나 명분에만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다. 여권은 즉각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법을 보완하는 모습을 국민앞에 보여야 한다. 여야영수회담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빠른 시일내에 용단(勇斷)을 내리면 「제2의 6.29」도 될 수 있다. 黃 在 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