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元在 기자」 지난해 경상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인 2백20억달러에 달하는 등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 대우 SKC 등 영화산업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국제시세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값으로 외국영화를 사들여영화계 안팎의 비판이 일고 있다. 13일 영화계에 따르면 SKC는 뮤지컬 영화 「에비타」를 4백만달러(약 32억원)에 수입했으며 대우는 액션영화 「롱키스 굿나잇」과 「라스트맨 스탠딩」을 각각 4백50만달러와 3백50만달러에 들여왔다. 지난 95년 「컷스로트 아일랜드」를 5백만달러에 구입, 국내 최고수입가 기록을 세웠던 삼성도 1∼3월중 「섀도 프로그램」 「보거스」 등 2백만달러대의 「고액 영화」를 선보일 채비를 하고 있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논란조차 일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외화 값올리기 경쟁은 세계 영화산업의 흐름이나 국내 흥행시장 규모 등을 무시한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대작영화 한편을 구입할 때마다 막대한 외화를 날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어 더욱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4백만달러짜리 영화의 경우 손익 분기점을 맞추려면 서울 개봉관에서 70만∼8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야 하지만 지난해 대기업이 수입한 영화중 이 기준에 든 흥행작은 한편도 없었다. 극장가에서는 「컷스로트 아일랜드」와 「라스트맨 스탠딩」 「롱키스 굿나잇」의 서울 관객수가 20만명을 약간 웃도는 점을 들어 세 영화가 각각 20억원 가까운 적자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영화수입전문가들은 인구 극장수 경제규모 등을 감안할때 한국이 세계 흥행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 일본은 10%선이라는게 국제 영화계의 통설로 외화수입가격도 일본의 20∼30%수준이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 외화수입업자는 『대기업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러대자 국제영화시장에서 「한국은 봉」이라는 인식이 퍼져 편당 판매가격이 일본 수준으로 뛰었다』고 분개했다. 소수 마니아(영화광) 대상인 유럽 예술영화의 경우 종전에는 수천, 수만달러에 살 수 있었으나 2,3년전부터는 한국의 기준판매가가 20만달러로 치솟았다는 것. 영화관계자들은 대기업이 수지타산은 도외시한채 「우선 영화판권부터 확보하고 보자」는 식으로 무모하게 달려든 결과 할리우드 영화사의 「충실한 돈줄」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우는 미국 뉴라인시네마사의 영화를 공급받는 조건으로 총제작비의 6%를 대는 계약을 맺었고 삼성도 뉴리전시사의 영화를 입도선매하는 방식으로 6천만달러를 투자했다. 대우시네마 관계자는 『영화시장에 첫 진출한뒤 경쟁사보다 한발앞서 영화물량을 확보하는데 집착하다보니 비싼 값에 사게 됐다』며 『갈수록 손해가 커지기 때문에 미국 거래처에 대해 불공평하게 맺어진 계약의 시정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국제관행상 계약수정이 쉽지 않은만큼 앞으로도 상당기간 외화낭비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문화체육부 관계자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외화 수입으로 인해 갖가지 폐단이 생겨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 고민』이라며 『비공식적 행정지도를 통해 자제를 종용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