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京〓黃義鳳특파원」 다큐멘터리 「鄧小平」에는 만년의 근황을 엿보게 해주는 몇가지 장면과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들도 적지 않게 소개됐다. 다음은 은퇴후인 지난 90년 1월 홍콩의 부호 李嘉誠(이가성)과 만났을 때 건강을 화제로 나눈 대화의 일부. 『97년까지 살도록 노력하고 있다』(鄧) 『내가 보장한다. 아마 97년 이후까지도 살 것이다』(李)『쉽지 않은 일이다. 한해 한해가 힘들다』(鄧) 『홍콩에 와 볼 수 있기를 바란다』(李) 『내가 홍콩반환때까지 살려고 하는 것은 우리땅을 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鄧) 일대기는 등소평이 94년 10월1일 천안문광장에서 벌어진 불꽃놀이를 「천안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 채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어 그가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암시하는데 그쳤다.6.4사태직후인 89년6월9일 중남해 회인당(懷仁堂)에서 등소평은 학생들의 시위사태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이번에 밝혀졌다. 『이번 사태는 예상된 일이다. 시기와 규모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명백하다. 공산당 타도와 사회주의 타도 두 가지다. 완전히 서구적인 공화국을 건립하려는 것이다』며 주먹을 불끈 쥔 채 가볍게 떠는 등소평의 모습이 장시간 화면에 비쳤다. 毛澤東(모택동)과 周恩來(주은래)가 등소평을 평가한 부분도 이채롭다. 56년 9월 공산당 제7기 중앙위원회 7차 전체회의에서 모택동이 등소평을 당총서기로 추천하면서 『그는 비교적 일을 잘하고 주도면밀하다. 또 공정하고 아량있는 인물이다』고 칭찬했다. 또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며 실용주의적 사고를 강조한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실제로는 황묘흑묘론(黃猫黑猫論)이 맞는다는 증언도 나와 흥미를 끌었다. 62년 공청단(共靑團)대표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등소평이 누런고양이와 검은고양이를 예로 들었다는 관련자의 증언과 함께 당시의 접견기록도 증거로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