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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여자의 사랑(15)

입력 | 1997-01-15 20:19:00


첫사랑 〈15〉 이제 스무 살 이야기를 합니다. 그해 겨울 여자 아이는 무난하게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무난하게」라는 말을 하고 보니 좀 그렇군요. 어떤 경우가 무난한 것인지 말이지요. 남보다 공부를 잘해 큰 애를 쓰지 않고도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무리하지 않았다는 뜻을 그렇게 말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겨울, 아저씨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대학 입학 시험이 끝난 바로 다음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 앞으로 항공 우편이 하나 와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캐나다로 이민간 같은 나이의 이종 사촌이 뒤늦게 카드라도 보낸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집을 놔두고 왜 학교로 보냈을까, 하고 몇 번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선생님한테 어디에서 온 것이냐, 보낸 사람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자세하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구요. 그런데 뜻밖에도 아저씨의 편지였습니다. 그것을 제 시간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대학 시험이 끝나고, 그 겨울의 첫눈이 아니라 내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새해의 첫 눈이 내린 날, 아저씨께 편지를 쓴 날로부터 꼭 일백오십칠일 만에, 보낸 사람 주소도 쓰지 않은 편지의 답장을 받은 것입니다. 편지는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것이었구요. 아저씨는 어떻게 내가 다니는 학교를 알았을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얼굴 모르는 채서영 학생에게 이 편지를 받고 오히려 서영 양이 놀라지나 않을지 모르겠군요. 먼저 지난번 편지의 답장을 보내게 된 사연부터 설명해야겠군요. 「명작의 고향」 마지막 회 부분을 쓸 때 나는 이미 파리에 와 있었습니다. 잠시 회사를 휴직하고 공부를 하러 온 것이지요. 그럴 경우 보통은 특파원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여의치 않아 휴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지난 가을, 파리로 온 회사 동료로부터 서영 양의 편지를 전해 받았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나도 많은 아쉬움이 있었는데,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거기에 나오는 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읽었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으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내 글을 읽은 사람이 있구나, 하고 무한히 기뻤습니다. 그 기쁜 마음으로 서영 양에게 꼭 답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답장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서영 양이 보낸 편지의 봉투에 검은 글씨로 선명하게 찍힌 우체국 소인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