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靜洙 기자」 『아, 애통하고 절통하구나.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는 악법들을 우리 여성들의 힘으로 물리치자꾸나』 사라졌던 민속의식인 「도깨비 굿」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재현됐다.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8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한국여성단체연합(상임대표 池銀姬·지은희·50)은 15일 오후1시 서울 종로구 제일은행 본점 앞 광장에서 도깨비굿을 벌였다. 도깨비 굿은 과거 전쟁이나 가뭄같은 국가적인 우환이 생겼을 때 남자들의 바깥출입을 금지하고 여성들이 모여 월경중인 여성의 속곳을 매단 장대를 들고 서낭당을 돌며 소리를 질러 우환을 물리치는 전래의 민속의식. 이날 굿판에서 쫓아내려 한 것은 가뭄이나 탐관오리가 아니라 악법(惡法)이었다. 지대표는 『개정노동법으로 남편들의 고용불안이 가중돼 가정의 평화도 위협받고 있다』며 『여성 고유의 저항방법인 도깨비굿으로 가정과 사회의 불안을 떨쳐내자』고 말했다. 굿판에 참여한 회원 50여명은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통과로 이 땅의 민주주의가 사망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소복차림에 삼베수건을 쓰고 등장했다. 민요패 「아라리오」 회원들은 아리랑영가를 개사해 「한다던 개정은 왜 아니하고 노동법 개악은 웬말이냐」는 등의 노래를 불러 흥을 돋우었다. 회원들은 신명이 난 무당의 선창에 따라 사방을 향해 『가정평화 파괴하는 노동법 안기부법 원천무효』 『고개숙인 남편들을 위해 악법을 철폐하라』등의 구호를 외치고 종로3가 탑골공원까지 행진을 했다. 탑골공원에 도착한 여성들은 대나무 장대끝에 매달린 속곳을 태워 허공에 날렸다. 인근 절을 다녀오다 이 모습을 본 신모할머니(81·서울 용산구 원효로)는 『어릴적 고향에서도 커다란 우환이 생기면 온 마을의 아낙들이 나와서 굿판을 벌이곤 했다』며 『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한마디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