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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창/루마니아]『못살아도 정치 수준급』

입력 | 1997-01-16 20:25:00


루마니아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은 독재자 차우셰스쿠, 체조요정 코마네치, 흡혈귀 드라큘라, 축구선수 게오르게 하지 등일 것이다. 문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저녁별」의 민족시인 미하이 에미네스쿠를 기억할 것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루마니안 랩소디」의 작곡가 조르주 에네스코를 빼놓지 않을 것이다. 루마니아는 89년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총살될 때까지 헝가리 폴란드 체코보다 정도가 심한 사회주의 독재국가였다. 개방이 시작된지 7년이 넘었지만 체제변혁의 물결속에서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부조리를 충분히 쓸어내지 못하고 있다. 서너평 남짓한 상점안에 물건을 파는 점원 따로, 돈받는 점원 따로다. 완전고용을 자랑하던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의 찌꺼기다. 대부분의 일들은 「조그만 성의」라도 표시하지 않으면 마냥 기다려야 한다. 이 사회에서의 나의 일상은 간혹은 생존을 위한 노력이었고 인내력 시험의 한 과정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과정을 지켜보면서 선거의 투명성과 루마니아 국민들의 저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1차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후보간의 TV토론은 멋진 하이라이트였다. 1인당 국민소득 1천3백80달러, 사회주의 독재의 때를 벗지 못한 나라에서 기껏해야 정해진 주제를 놓고 질의 응답하는 정도겠지 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토론자세는 진지했고 주제 역시 수준높은 것들이었다. 상대방을 비방하는 비신사적인 행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생중계 토론은 다음날 다른 민영방송에서도 실시됐는데 당초 1시간으로 합의했던 시간을 2시간으로 연장할만큼 열기가 넘쳤다. 유권자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두 후보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올봄에 귀국할 예정인 나는 한국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들을 마음껏 저울질할 수 있는 시청자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고 규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