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廷輔기자」 헌법재판소가 16일 국가보안법 4조1항의 국가기밀의 개념과 관련해 한정합헌결정을 내린 것은 그동안 국가기밀을 폭넓게 인정해온 대법원 판례에 사실상 제동을 거는 것으로 풀이된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따르면 국가기밀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비밀로 감추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누설될 경우 국가 안전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만큼 실질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좁게 해석해야 한다. 헌재는 지난 92년 2월 「군사상 비밀」의 개념이 애매하다며 제기된 군사기밀보호법 6조에 대한 위헌심판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한정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어 이번 결정은 국가기밀에 대한 헌재의 확고한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동안 정치권동향 대통령선거전망 등 신문기사나 합법적인 출판간행물을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이라도 북한에 유리한 자료가 되고 대한민국에는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은 국가기밀로 폭넓게 인정해왔다. 예를 들어 대법원은 지난 89년 방북한 작가 黃晳暎(황석영)씨가 당시 북측에 「국내운동권 인사의 성품과 국내문인의 주도세력이나 통일전망에 관한 개인 의견」을 말한 것이 국가기밀 누설에 해당된다며 유죄를 인정하는 등 국가기밀의 기준을 그 내용의 중요성보다 이적성 여부에 두었다. 이에 대해 헌재는 국가보안법 4조1항이 죄형법정주의의 관점에서 매우 소홀한 입법으로 개정이 필요하며 국내외의 국가기밀 관련법과 비교해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헌재가 이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하지 않고 한정합헌으로 결정함으로써 그 효력에 대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막상 헌재의 이날 한정합헌결정을 재판과정에서 적용할 대법원이 지난해 4월 양도소득세 부과처분취소소송에서 『헌재의 한정합헌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할 뿐 법적 기속력이 없기 때문에 따를 필요가 없다』고 판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헌재의 단순위헌결정이 아닌 한정합헌 또는 한정위헌결정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어서 이날 결정을 대법원이 그대로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또 대법원이 헌재결정을 따르지 않더라도 헌재로서는 이날 결정을 법원에 강제할 법적 수단도 없다. 따라서 만약 대법원이 국가기밀을 폭넓게 인정한 기존 판례를 고수할 경우 이날 헌재결정의 무력화와 함께 최고사법기관인 헌재와 대법원간의 권한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적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