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신문과 방송을 통해 국방장관 대통령수행실장 은행장이 쇠고랑을 차고 잡혀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을 때의 첫 느낌은 놀라움과 신기함이었다. 그 뒤 두 명의 전직대통령을 재판, 사형 등 엄벌을 선고했을 때의 느낌은 솔직히 『북한이라면 주석을 재판하는 것인데…. 살다보니 이런 나라도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신기함을 넘어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올해 들어서는 근로자 파업과 시위가 또 새롭게 다가온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야말로 별천지에 온 느낌이다. 그런데 투석전과 최루탄으로 금방 난리가 나고 나라가 무너질 것같은데도 다음날 같은 곳에 가보면 시위의 흔적조차 별로 없을 만큼 평온하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판단할 능력은 아직 없지만 『정말 이래도 나라가 지탱되나』하는 우려와 『이것이 민주주의의 강점인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한국사회의 부정부패에 관해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만은 북한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절감한다. 북한에서는 과오를 저질러 처벌을 받으면 농촌이나 탄광으로 추방되든지 심하면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다. 그러나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상급자가 봐주면 그걸로 끝이다. 신문 방송이 고위층의 범법행위를 추적해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당(黨)정(政)군(軍)의 간부가 맘만 먹으면 봐줄 수 있다. 요즘 여러 경로로 한국을 배우고 있지만 제일 유익한 선생은 신문과 TV다. 처음에는 이렇게 미주알 고주알 보도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강했다. 속에 있는 것을 북한에 통째로 내보이는 것이라는 우려도 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남한의 신문은 밑줄을 쳐가며 정밀분석하고 미국 일본 등 서방세계의 언론을 주요 정보원으로 삼아 정세를 판단한다. 그러나 북한의 정책결정과정은 남한과 딴판이다. 외교정책이라면 실무부서가 기안한 정책초안을 인민무력부 대외경제위원회 등과 사전협의, 노동당의 최종동의를 받아 김정일에게 문건으로 보고한다. 김정일의 「지시」나 「방침」이 내려오면 그걸로 끝이다. 남는 것은 「제때에 무조건 끝까지 철저히」 관철하는 것뿐이다. 현 성 일 ▼ 약 력: △38세 △김일성대학 졸업 △김일성대학 영문과 교원 △북한외교부 잠비아대사관 근무 △96년 1월 망명 △북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