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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인성교육현장/시간약속]이웃집 갈때도 『예약』

입력 | 1997-01-19 19:43:00


「런던·본·프랑크푸르트〓李珍暎기자」 『아니, 그럴 수가 있어요. 애들이 다 모이지도 않았는데 버스가 떠나다니…』 충북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사는 주부 金東璇(김동선·42)씨는 이웃에 사는 학부모가 건너와 씩씩대며 하는 말을 듣고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화가 난 학부모에 따르면 오전10시에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야외학습을 가기로 했는데 20분정도 기다리던 유치원 버스가 그 때까지도 오지 않은 아이들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떠나 버린 모양이었다. 김씨는 시간을 지키지 않은 학부모 잘못이지 왜 버스를 나무라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똑같은 항의전화가 유치원으로 많이 걸려왔더라는 옆집 여자의 말을 듣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김씨가 대화 중 쓴웃음을 지은 것은 3년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살 때 자신도 똑같은 실수를 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 김씨는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둘째아이를 데리고 야외학습 출발장소에 5분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5분도 기다려주지 않고 정시에 떠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김씨는 『그후로도 몇차례 지각을 하고서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게 됐다』며 『소위 「코리안 타임」에 익숙한 한국사람들은 미국사람들의 철저한 시간관념에 처음에는 당황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예약문화속에서 자란 꼬마들은 친구집에 놀러갈 때도 예약을 한다. 지난달 영국 런던의 던도널드 유치원에서 기자가 만난 다섯살짜리 엠바와 잭. 둘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니는 단짝친구다. 소꿉놀이 코너에서 엠바가 떠넣어주는 빈 숟가락을 쩝쩝대고 받아먹으며 엠바의 아들노릇을 하던 잭이 하는 말. 『엠바, 너의 집에 가서 더 놀자』 유치원이 끝나면 엠바와 헤어져 집에 가는 것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이따 엄마가 오면 물어봐』 정오가 돼 아들을 데리러온 잭의 엄마는 아들의 청을 듣고 엠바의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잭이 엠바와 놀았으면 하는데 다음주 중에 오후3시부터 5시까지 잭을 보내도 될까요』 『네, 월요일이 괜찮으시면 그때 보내세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이웃사촌간이지만 아이 맘대로 남의 집에 불쑥 들이닥치게 하는 법이 없다. 생일 초대장을 보낼 때도 그렇다. 아이들이 서투른 솜씨로 만든 초대장에는 다음과 같은 시간이 적혀 있다. 「가브리엘의 생일파티. 월 일 13∼16시. 3일전 참석여부 알려주기 바람」. 유치원의 등원시간도 엄격하다. 지각도 안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칭찬받는 「빨리 빨리」도 안된다. 영국 셰필드 윈드밀힐 학교의 등교시간은 오전8시반. 오전 8시20분쯤이면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교문앞에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시린 발을 동동 구른다. 문은 정확히 8시반이 돼서야 열린다. 『수업준비를 하고 있을 선생님에게 방해가 되잖아요』 아이들이 일찍 오더라도 밖에서 기다리는 이유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 본 바이덴베크 시립 유치원의 등원시간은 오전7시반. 정확히 그 시간에 문이 열릴 때까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크레츠 원장은 『교사들에게 방해가 될뿐만 아니라 사고보험 등이 그 시간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그전에는 들여보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집안에서도 시간을 엄수하는 습관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영국 런던에 사는 개구쟁이 알렉산더(9)는 아직 시계보는 일이 서툴다. 하지만 생활은 규칙적이다. 오전7시면 일어나 저녁 8시반이 되면 잠자리에 든다. 영국의 여름은 저녁 8시라도 해가 길어 대낮 같다. 그러나 커튼으로 컴컴하게 해놓은 뒤 잠을 청한다. 아이들의 습관은 강요만으로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알렉산더는 지금까지 엄마나 아빠가 자기와 한 시간약속을 어기는 일을 본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