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水)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去). 그것이 법(法)이며 순리다. 사회질서라는 자막대기의 눈금을 매기면서 순리를 첫째 눈금으로 삼는다면 우리의 삶터에는 더불어 사는 기쁨이 샘처럼 넉넉히 고여 넘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짜여진 논리일지라도 순리를 앞지른다면 더불어 사는 삶은 기쁨이 아닌 아픔과 갈등일 수밖에 없다.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노동계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신한국당 일각에서 보완책 마련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열린 발상이라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어딘가 앞뒤가 어긋났다는 씁쓸함은 여전하다. 삶은 과정이다. 그 과정을 바로세움이 곧 순리 아닌가. 목적론과 상황론도 중요하다. 그러나 열백번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과정을 무시한 목적과 상황은 합리화될 수 없다. 순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여론형성이라는 거름장치를 무시한 입안과정과 기습적 변칙처리가 갈등의 불씨였다. 최소한의 「방화벽」조차 없이 밀어붙인 이같은「결단」은독단에다름없다. 처음부터 만만찮은 반대가 있었다. 노동계의 전면파업도 예상됐다. 법안통과에 앞서 충분한 여론수렴과 설득과정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어둑한 새벽에 단독으로 기습통과를 감행했다. 그래서 예고됐던 갈등과 아픔이 증폭되어 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국론낭비가 더는 없어야 한다. 순리가 우선하는 사회가 요망된다. 국민 모두가 함께하는 나라살림을 꾸려갔으면 한다. 그럴 줄 아는 슬기로운 정치권을 보고 싶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88서울올림픽의 대차대조표나 월드컵 개최에 목을 매야 했던 까닭이 궁금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의 명암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서둘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야 했던 당위성도 알듯 모를 듯하다. 꼼꼼히 따져서 이리 재고 저리 맞춰볼 설명이나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 국민을 모래알에 비유한다. 모래가 시멘트를 만나면 돌보다 굳은 콘크리트가 된다. 정치권은 국민의 시멘트가 돼야 한다. 그러자면 순리를 우선하는 정치논리가 자리잡아야 한다. 그 순리는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 각성을 촉구한다. 박 영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