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의 표어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는 것이다. 본인은 재판을 함에 있어서 법관들이 특별히 유의하여야 할 점은 약자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강자의 정의는 일류 변호사들을 선임하여 완전하게, 때로는 지나치게 보호되는 것이 사법의 현실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사회에서 정의가 존재하느냐 않느냐의 문제는 과연 자신을 제대로 변호할 수 없는 약자들의 정의가 얼마나 보호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지난 해 10월 본인이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직을 사퇴할 때도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다. 헌법기관 중 가장 위상이 취약한 선거관리위원회가 온갖 조롱과 비아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본인이라도 그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주기 위하여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상을 높여 국가기관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무언가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금번의 위헌제청결정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국가의 안위에 대하여 기도하고 걱정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다. 금번 위기를 우리 사회가 헌법국가 법치국가로 성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대립하는 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절차적 정의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우리 법원의 위헌제청결정과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우리 나라에 절차적 정의를 확고히하여 주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어느 회의체의 의결이든 그 구성원의 중요한 일부분에 대하여 소집통지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무효라는 것은 법의 일반원칙인 동시에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모든 법치국가에서 확립된 판례다. 법률적 용어로 이른바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인 것이다. 왜 이 원칙이 우리 국회의 의결의 경우에만 적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모든 회의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국회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라나는 후세들 및 유구하게 전개될 우리의 역사 그리고 세계화를 외치는 선진 한국 법질서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결론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헌법학자들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야당이나 노동계로서는 위헌무효여부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기고 금번 영수회담의 정신을 존중하여 하루빨리 국회를 소집하여 법안내용에 대하여 심의함이 정도이고 노동계로서도 국익을 위하여 파업만은 푸는 것이 모든 국민의 간절한 소망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이것이 또한 헌법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모당 원내총무가 밝힌 재판부가 국회법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포함하여 위헌제청이 각하될 것이라는 성급한 견해들은 모두 우리 재판부의 위헌제청결정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이는 또 여론을 호도하고 사법부의 헌법 법률 및 양심에 따른 결정을 정치적으로 비난하는 것으로 사법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된다는 점을 밝힌다. 문 흥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