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직후 TV뉴스에서 재수생 합격률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보도를 듣고 혼자서 『아, 남한에도 「죄수」가 많아 문제인 모양이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며칠 후에는 어떤 「3수생」의 일류대합격 얘기가 TV에 보도됐다. 나는 『대학 가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세 번이나 교도소에 갔던 학생까지 대학에 입학시킨다는 거야』하고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북한에서 교육받기로는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부모가 잘 살지 못하면 자녀들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세 번씩이나 교도소에 갔다 온 학생까지 대학에 입학시킨단 말인가. 남한에 살면서 보니 이것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였다. 재수생 3수생의 뜻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대입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미혼이지만 남한생활에서 과연 남들처럼 과외다 특기교육이다 해서 아이들을 볶아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이제는 남한의 교육실정을 알고 있다. 북한의 대학입시제도는 철저한 추천제를 바탕으로 한다. 원하는 대학에 마음대로 지원할 수 없고 자신이 졸업한 고등중학교(6년제)의 추천을 받아야 대학에 응시할 수 있다. 내가 졸업한 자강도 강계시 북천고등중학교는 졸업생이 남녀 3백10명이었으나 대학응시자격증인 「뽄투」(중앙에 있는 교육과에서 각 시 도 군으로 대학별 응시자격을 할당하는 것)는 몇십개가 내려올 뿐이었다. 그것도 평양에 있는 대학에 응시할 수 있는 뽄투는 한두 개, 나머지는 지방대학이나 전문학교의 뽄투다. 강계시에서 내로라 하는 학교가 이 정도다. 이러다 보니 아무리 공부를 잘 하는 학생도 뽄투가 없어 시험 한 번 보지 못하고 공부를 포기한 채 직장으로 가거나 아예 군대에 가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지방 고등중학교에서는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업대학 등의 뽄투가 몇개 내려왔다 하면 이것을 따내려는 학부모들이 도 행정위원회 교육과를 뻔질나게 찾는다. 이들은 대체로 도당 인민위원장 행정위원장 안전부장 보위부장 검찰소장 등 지체높은 간부들이다. 노동자 농민의 아들 딸은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대학문전에 가보기 어렵다. 남한의 입시지옥이 지독하긴 하지만 공사판에서 일하면서 일류대학에 수석합격한 얘기가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 이곳은 그래도 「노력하면 기회는 주어지는 땅」이다. ▼약력 △37세 △김책공업대학 졸업 △백두산 건축연구원 책임지도원 △91년 귀순 △한국관광공사 근무 △가수 겸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