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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수사/쟁점정리]투자비 당초계획보다 3兆 늘어

입력 | 1997-01-29 20:19:00


[許承虎·林奎振기자] 검찰의 수사착수를 계기로 한보그룹 사태와 관련된 갖가지 비리와 의혹이 파헤쳐질 전망이다. 수서사건을 겪으면서 좌초위기에 빠졌던 한보는 은행돈을 쌈짓돈처럼 쓰면서 5조7천억원규모의 매머드급 투자를 했다. 또 당진제철소 공사만으로도 허덕이던 기업이 94년이후 유원건설 등 18개의 계열사를 신설하거나 인수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은 하나하나가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사안들. 이 때문에 한보사태는 앞으로 재계 금융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등 우리 사회전반에 연쇄적인 파문을 몰고올 것으로 우려된다. 검찰수사로 과연 한보의 뒤를 봐준 「정치권 실세」가 밝혀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명성 수사, 덮기식 수사로 일관한다면 검찰이나 정부에 쏟아질 비난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착수를 계기로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들을 정리한다. ▼당진제철소 부지조성을 위한 공유수면매립〓지난 89년 당시 옛 건설부의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에는 현재 당진제철소가 들어선 충남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 일대를 매립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한보철강은 88년 9월 계획변경을 요청했고 건설부는 이를 바탕으로 이 일대 77만평의 매립을 허용하는 변경안을 작성, 일사천리로 각종 절차를 진행시켜 89년6월 이를 확정 고시했다. 연구기관 용역은 물론 충분한 타당성 검토도 없었다. 「권력기관의 개입없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당시 국회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용융환원(코렉스)설비도입〓한보는 코렉스 설비를 도입하면서 재정경제원장관에게 신고서를 제출했으며 통상산업부장관은 이 기술을 제공하는 외국기업에 지급하는 로열티가 조세감면대상에 해당한다고 확인해 줬다. 한보는 이 공법이 최신기술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관련업계에서는 『세계적으로 상업성이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방식이며 특히 괴강(塊鋼)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여건에 맞지않는 방식』이라며 정부가 왜 이처럼 무모한 투자를 지원했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과다대출 및 외압〓93년부터 산업은행이 본격적으로 시설재자금 지원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제일 조흥 외환은행 등이 자금대출에 합류했다. 당시 한보는 수서사건으로 사회적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제일은행은 한보철강에 1조8백억원을 대출, 은행 납입자본(8천2백억원)을 훨씬 초과하는 빚을 한 기업에 몰아주었다. 한보의 주거래은행은 지난 94년까지만도 서울은행이었으나 한보가 30대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서울은행이 주거래은행을 맡으려 하지 않자 은행감독원이 조정, 제일은행이 떠안았다. 제일은행은 또 신용평가기관의 평가결과 한보의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 대출을 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계열사 확장〓한보그룹은 지난 95년 부도가 난 유원건설(현 한보건설)을 경쟁끝에 전격 인수했다. 당진제철소 건설기간중 한보는 유원건설뿐 아니라 △상아제약 인수 △시베리아가스전 개발 참여 △충남지역 도시가스공급권 수주 등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94년부터 작년말까지 무려 18개의 계열사를 인수하거나 신설한 것. 또 불발로 끝나기는 했으나 포항의 동명제강을 인수하려 했으며 무선데이터통신사업과 위성방송사업 참여를 시도, 재원조달에 대한 세간의 의혹이 계속 증폭돼 왔다. ▼은행감독원의 방조〓채권은행들은 「동일인 여신한도」라는 은행법상의 규제를 피해 신탁업법의 적용을 받는 신탁대출을 통해 총대출의 50%에 육박하는 과다한 편법대출을 자행했다. 은감원은 『이는 재경원의 감독사항』이라며 감독을 포기했다. 은감원이 한보에 대한 무리한 대출을 방임한 점은 관례나 상식에 비춰 납득하기 힘든 대목. 지난 20일 한보 어음의 결제자금이 없었는데도 은감원이 금융결제원에 부도처리를 23일까지 미루도록 지시한 점도 해명돼야 한다. ▼㈜한보 수주과정〓평은∼영주간 도로공사와 보은∼내북간 도로공사, 중앙고속도로 원주∼홍천간 공사는 동아건설 임광토건 현대건설로 시공사가 거의 결정난 단계에서 ㈜한보가 가로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한보가 관급공사의 사전자격심사(PQ)만 통과했다 하면 그 공사는 ㈜한보로 간다』는 얘기까지 나도는 실정. 수서사건으로 파산직전까지 몰렸던 ㈜한보는 지난해 건설업계 도급순위 7위로 급부상했다. ▼엄청난 투자비 증가〓당진제철소 투자비는 당초 계획으로는 2조7천억원이었으나 5조7천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한보는 이에 대해 『장기간에 걸쳐 투자가 이뤄지는 대규모 장치산업의 특성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당초 투자계획과 실제규모가 3조원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 한보는 『은행이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초기 투자규모를 최소한으로 잡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 당초 사업계획서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간접 시인했다. ▼지원중단 급선회 경위〓4개 주요 채권은행단은 작년말 4천억원, 올해초 1천2백억원을 긴급지원했다. 「국가기간산업인만큼 얼마남지 않은 완공 때까지는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마지막 거액대출이 이뤄진 8일부터 부도가 발생한 23일 사이에 한보에 대한 입장이 급선회한 것. 채권은행단은 정부와 청와대의 지침을 받고나서 부도처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럽게 운명이 뒤바뀌자 한보는 『한보를 탐내는 세력의 음모가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