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작가 나카지마 아스시의 「산월기」(山月記)란 작품에는 호랑이가 된 시인이 나온다. 시인으로서의 상당한 재능도 부여받았고 어느 정도 노력과 성취도 있었으나 끝내는 삶에도 시에도 실패하고만 시인의 이야기다. 그는 마침내 한마리의 호랑이로 변해 숲속으로 사라지는데 몇년 뒤 관리로 출세한 옛친구를 만나 자신이 그렇게 된 경위를 털어놓는다. ▼ 마음만 가득찬 성취욕 ▼ 한마디로 그를 호랑이로 만든 것은 분노하고 미워하는 마음이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분노하고 하찮은 학식과 재능으로 출세해 누리는 자들을 미워하다보니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호랑이로 변해갔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섬뜩한 것은 스스로 분석하는 그 분노와 미움의 본질이다. 그는 망대(妄大)한 자존심으로 좋은 스승을 찾아가 더 배우려 하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재능을 갈고 닦으려 하지도 않았다. 얼핏 보면 당당한 자기확신 같지만 기실 그 자존심 뒤에는 두려움과 게으름이 있었다. 자신의 대단찮은 천품이 들킬까봐 겁내고 갈고 닦는데 들어가는 노력과 고통을 싫어했다. 그래놓고도 이름을 얻는데는 조급하니 세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 쌓일 수 없었다. 또 타고난 재능은 적어도 열심히 갈고 닦아 성취한 이를 시기하다보니 미움만 자라갈 뿐이었다. 무엇이든 물어뜯고 찢어죽여야만 시원할 듯한 마음 속의 호랑이는 그렇게 커가다가 마침내 몸까지 바꿔놓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성취가 어디 시에서뿐이겠는가.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성취가 한결같이 바탕하는 것은 겸손한 노력일 터이다. 그것이 없으면 세상은 다만 분노와 미움의 대상일 뿐이고 저마다 마음 속에 키우는 것은 한마리 흉포한 호랑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호랑이들을 마음속에 길러가는 듯하다. 저마다 성취를 갈구하면서도 비겁함과 게으름으로 분노와 미움만 키워간다. 문화든 경제든 정책이든 생산자는 다만 혹독한 비평의 대상일 뿐 이해하고 인정하는데 지극히 인색하고 대신 다투어 평자(評者)를 자임(自任)해 그 권리만 즐긴다. 비록 타고난 바 재능은 많지 않아도 널리 배우고 열심히 갈고 닦아 생산하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호랑이의 심성을 가진 평자만 우글거리면 그 자산은 그대로 남아나지 못한다. 분노와 미움에 갈기갈기 찢겨 마침내는 쓰레기통에 처박혀버릴 것이다. ▼ 으르렁대기만 할건가 ▼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분노와 미움의 정서로 소란하다.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을 쟁점으로 한 노동자들과 정부의 힘겨루기, 한보의 부도 같은 현안 외에도 우리의 분노와 미움을 자극하는 문제들은 수없이 많다. 1월 한달 동안만 40억달러에 육박하는 무역적자로 대표되는 경제적 난맥,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점차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어가는 정치판, 양산(量産)으로 활력을 위장하고 있을 뿐인 문화에 이르기까지 눈씻고 보아도 곱게 보아줄 구석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도 한번쯤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혹시 여기서도 우리는 저마다 마음 속에 호랑이를 키워가고 있지나 않은가. 겸손한 노력으로 이 난국을 헤쳐가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분노와 미움의 으르렁거림만 주고받는 것은 아닌가. 이 문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