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賢眞기자] 삼성화재의 김모대리(29)는 요즘 오후만 되면 죽을 맛이다. 오늘은 「업무평가」에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가 고민이다. 매일 사원 스스로가 그날 한 일을 기록하게 되어 있는데 부인의 임신때문에 최근 업무를 등한시하다보니 딱히 적을 말이 없다. 꾸며서 쓸까, 아니면 솔직해질까 고민하다 결국은 솔직해지기로 했지만 매일의 업무평가가 인사고과에 반영된다는 생각에 찜찜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현대자동차의 이모과장(35)은 최근 도입한 「업적평가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 업무목표서를 제출해 곧 스스로 자신을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는지 목표달성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업적평가서에 자신의 손으로 「목표미달」을 기재해야 할 것은 뻔한데 스스로 목을 자르는 기분이어서 영 개운치가 않다. 최근 기업마다 신인사제도의 도입으로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제도가 각 기업마다 실시되면서 「자기평가」가 직장인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다. 상사들이 꼼꼼히 지켜보고 있는데 감히 거짓으로 기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평가하기엔 영 달갑지 않은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한 것이다. 자기자신의 평가가 상사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예는 극히 드물다. 이 제도를 도입한 LG―EDS의 경우 스스로를 높게 평가한 사람은 항상 상사에게 깎이고 낮게 평가한 사람은 오히려 위에서 자기자신의 평가보다 후하게 주어진다는 것. 지난해 5월부터 사원 스스로가 근무성적도 매기고 임금까지 결정하는 남성전선(경기 시화공단소재)의 경우 이전보다 이직률이 훨씬 줄어들었다. 결정된 임금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월급이 적다 많다 말할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회사는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