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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인간신뢰의 文化

입력 | 1997-02-02 19:57:00


이번 한보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인가 큰 사건이 터졌다 하면 그 본질문제에 대한 여론과 분석은 실종되고 흥미위주의 가십이 그 아랫목을 차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이 아니라 「연기」만을 보고 재채기를 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면 흥미가 바래는 것이 가십의 생리이기 때문에 결국 가십이 이끌어가는 정치쟁점이나 사회문제들은 해결이 아니라 그냥 망각에 의해서 묻힌다. 그래서 새로워야 할 뉴스는 늘 묵은 뉴스의 후렴을 듣는 것처럼 똑같다. ▼흥미성 「가십」의 위험성」▼ 원래 「가십」이라는 말은 「대부(代父)」를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16세기부터 잡담꾼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고 19세기 이후부터는 오늘날처럼 사교계의 소문이나 험담같은 뜻으로 타락해 버렸다. 그러고 보면 「대부」란 말이 「가십」이란 말로 변한데는 그럴만한 원인이 있을 것같다. 대부라고 하면 마피아를 다룬 영화에서 보듯이 의사(擬似) 가족집단을 연상하게 된다. 그것은 열린 사회집단과는 성질이 다르다. 가족 혹은 의사 가족집단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공공성의 논리가 아니다. 「피」와 같은 비이성적인 힘 그리고 정분과 같은 분위기의 그 내밀성(內密性)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집단에서 생겨나는 것은 공적인 여론이라기보다는 귓속말로 소곤대는 가십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한보가 우리에게 주는 근본적인 충격은 몇조원대의 대부가 아니라 그런 액수를 받은 그 거대한 기업 조직이 구멍가게 같은 가족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조직은 한보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 대기업들이 혈연을 핵으로 한 가족체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생각나는 것은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의 몰락을 예언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말이다. 그는 최근작 「트러스트」에서 앞으로의 세계를 점치는 또하나의 「예언」을 하고 있다. 그는 개방 시장원리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토대로 한 민주주의로 세계의 역사는 결판이 났지만 그 나라가 지니고 있는 문화에 의해서 그 양상은 각기 달라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인간을 신뢰하는 문화」와 가족이 아니면 사람을 「믿지 못하는 문화」의 두 유형으로 나누어 놓고 그것이 바로 그 나라의 「소셜 캐피털(사회자본)」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을 신뢰하는 문화」 유형에 속하는 나라로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를 들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나라로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라틴계에 속하는 유럽국가들을 꼽고 있다. ▼후쿠야마의 예언▼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지구 규모의 대기업은 모두 「인간을 신뢰하는 문화」 속에서 나오고 있으며 결국 21세기의 세계시장은 「트러스트」의 사회자본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시점에서 보면 「왜 같은 유럽이라고 해도 이탈리아에는 세계규모의 대기업이 없는가. 어째서 마피아의 집단이 아니라도 그들 기업은 가족 중심의 패밀리 비즈니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반대로 같은 아시아인데도 어째서 일본인들은 세계적인 대기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를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후쿠야마는 중국이 세계 경제대국이 된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론 대만 홍콩 그리고 우리 한국의 유교권문화를 포함해서. 후쿠야마의 예언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다. 한보의 이번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도, 그리고 그것이 정치인의 가십으로 번지고 있는 것도 모두가 프란시스 후쿠야마 문화유형의 모델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정말 인간신뢰의 문화가 없는가. 가족집단에 치우친 우리의 그 빈약한 사회자본으로는 결코 21세기의 아침을 맞이할 수 없다. 이것은 정치나 기업의 부패보다도 더 무서운 문제다. 이어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