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소나무 껍질을 먹기야 하겠어』 『옥수수죽도 못먹는다니 말이 안돼』 북한동포들이 굶주리는 실상을 구구절절 얘기해도 아무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탈북 동포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의 식량난이 확연히 현실로 드러났다. 외신 보도를 봐도 역시 그렇다. 그런데도 못들은 체 할 것인가. 그냥 무디어진 감각으로 외면하고만 있을 것인가. 아무리 주의와 사상이 달라도 2천만 북한동포는 우리와 한 핏줄을 나눈 형제요 자매들이다. 반세기 전만 해도 서로 오가며 정을 나누던 한 민족이다. 어떤 이유나 설명으로도 외면하지는 말자. 내 핏줄 내 형제가 수해와 흉작으로 지금 굶어죽기 직전에 있다. 어찌됐든 살리고 봐야 한다. 전쟁물자로 쓴다느니 고위관리만 포식한다느니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만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중국 북경에서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편 적이 있었다. 중국에서 살고있는 수백명의 교포들이 적극 동참해 모금한 1만여달러를 북한대사관에 전해주었다. 관계자는 우리에게 영수증을 전해주며 고마워했다. 그 후 약품과 구호품을 사서 「인민」들에게 나눠주었다고 전해주기까지 했다. 우리돈으로 쳐서 3만∼5만원의 월급으로 생활하는 중국 교포들이 월급의 20% 이상씩을 선뜻 내놓는 것이 아닌가. 진한 동포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지난해 국내에서 「하루 두끼먹기 운동」을 펴면서 나름대로 모금을 해봤지만 동참하는 사람이 너무나 적었다. 홍보나 정성이 부족했다고 인정한다 해도 그렇다. 우리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면서도 인정은 삭막하게 메말라 있다. 서글프고 한심한 노릇이다. 지난 신년연휴였다. 청량리의 우리 숙소로 조선족 동포 15명이 찾아왔다. 일가친척을 찾아가도 마음이 편치 않다며 굳이 시설도 열악한 우리 숙소에서 신년휴가를 즐기고 일터로 흩어졌다. 우리네 인정이 언제부터 이토록 차가워졌는지 모를 일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옛조상들이 지녔던 넉넉한 인정의 흔적이 남아 있으리라. 이제는 풍요한 물질만큼 풍요한 마음으로 북녘땅의 추위를 녹여보자. 결국은 내 영혼을 살찌우고 내 핏줄과 더불어 사는 도리가 아니겠는가. 원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