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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심칼럼]석고대죄의 자세로

입력 | 1997-02-06 18:55:00


신한국당 洪仁吉(홍인길)의원과 국민회의 權魯甲(권노갑)의원이 한보 鄭泰守(정태수)총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대서 정국이 벌집 쑤신 듯하다. 권의원은 「조건 없이」 떡값과 정치자금으로 1억5천여만원을 받아 썼다고 자백했으나 홍의원은 「나는 바람에 날리는 깃털」이라며 수뢰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수서(水西)사건」의 확대 재판(再版)을 보는 것도 같고 盧泰愚(노태우)비자금사건 때의 金大中(김대중)총재 20억원 수수 시인을 배역만 바꿔 다시 보는 것도 같다. ▼등돌린 서민들의 마음▼ 홍의원과 권의원은 세상이 다 아는 양김(兩金)의 「집사장(執事長)」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은행장들조차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외압(外壓)의 실체이거나 검찰조차 단독으로 수사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믿는 사람은 여당 안에도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여당의 「실세」라는 사람이 「깃털」이라고 한다면 그는 단지 국민의 분노의 제단에 바쳐질 희생양으로 찍혔을 뿐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외압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것을 밝혀낼 수 있는 사람은 한보사태를 「부정부패의 표본」으로 규정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다짐한 金泳三(김영삼)대통령밖에 없다. 그 실체를 밝혀내지 않거나 비켜가면서 은행장이나 정관계인사 몇명을 더 잡아넣는다고 해서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의혹과 분노를 풀 수는 없다. 부정한 돈, 명분 없는 돈을 덥석덥석 받아쓴 야당인사들의 도덕성을 질책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들에게 외압의 책임을 함께 덮어씌우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김대통령은 서민들의 냉소를 깊이 살펴야 한다. 한보사태가 터지자마자 서민들은 「시나리오로 시작해서 시나리오로 끝날 것」, 「잔챙이」 몇명 감옥 넣어봐야 때가 되면 슬그머니 풀려날 것, 이 소용돌이에서 죽어나는 것은 결국 서민들뿐일 것이라고 차갑게 예단했다. 그들은 정부 여당이나 야당에조차 희망을 버린지 오래다. 이 서민들의 돌아선 마음을 부여잡지 않고 나라를 끌고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 서민들은 다름아닌 나라의 주인이다. 그들은 전국의 4대강을 깨끗이 정화할 수 있는 5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부정한 사람으로 판정난 기업인에게 왜, 어떻게 특혜대출됐는가를 한점 의혹 없이 밝히기를 바란다. 만약 이것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밝히지 않는다면 서민들의 마음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가지고는 경제는 물론 나라 전체가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수서사건의 진짜 배후가 청와대비서관이 아니라 바로 노태우씨였음은 정태수총회장이 1백50억원을 노씨에게 준 사실이 노씨비자금사건 때 드러남으로써 분명해졌다. 그 부도덕한 사례를 떠올려 권노갑의원 뒤에 누구, 홍인길의원 뒤에 누구 하는 식의 위험한 의혹 부풀리기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한보사태의 외압 실체는 말 그대로 성역없이 밝혀 단죄해야 한다. 그것이 김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이 본질에 대한 정면돌파만이 김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도덕성을 확인받는 길이다. ▼김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당정개편은 그 다음 일이다. 정치권이 모두 죽는다는 위기감에 몰려 적당한 선에서 덮고 사람 몇명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끌고온 책임, 사람을 잘못 기용하고 잘못 다스린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席藁待罪)하는 자세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사람 바꾸기」가 아니라 「세력 바꾸기」로 주변을 정리하고 정권재창출을 떨쳐버린 빈 마음으로 나라살리기에 전념할 때 남은 임기동안 대통령의 리더십은 보장될 것이다. 김종심(논설위원)